[단독] ‘고운몸매’ 여고 교훈 51년 만에 떼어낸다

[단독] ‘고운몸매’ 여고 교훈 51년 만에 떼어낸다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18-10-28 22:44
업데이트 2018-10-29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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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보도 그후] 2018년 4월 11일자 1면

“시대 착오적인 성 역할” 비판 수용
서울 Y여고 공모전 통해 교훈 바꿔
학생 참여 ‘새 교훈 만들기’ 새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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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몸매’라는 교훈(校訓)을 ‘금과옥조’로 여겨 온 서울의 한 여고가 50여년 만에 교훈을 전격 교체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교훈이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순결’ 등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조하는 교훈을 가진 여학교들도 ‘교훈 바꾸기’에 동참하고 있다.

서울의 Y여고는 지난 26일 51주년 개교기념일을 맞아 새로운 교훈을 발표했다. 1967년 설립 이래 줄곧 이어져 내려온 교훈인 ‘맑은 마음, 착한 행실, 고운 몸매’ 가운데 ‘착한 행실’과 ‘고운 몸매’를 각각 ‘바른 행동’과 ‘밝은 지혜’로 바꾼 것이다. 설립자의 창학이념을 중시하는 사립학교에서 교훈을 바꾸는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지난 4월 학교 측은 논란이 된 ‘고운 몸매’의 의미에 대해 ‘내면의 아름다움에 바탕을 둔 행동의 성숙’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표현 자체만 놓고 ‘신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뜻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더 우세했다. 이에 이 학교 학생회는 지난 5월 14일 교훈 공모전 추진 계획을 알렸다. 그러자 학교 측은 이튿날 졸업생, 학부모, 교직원을 비롯해 같은 법인 소속의 Y여중까지 참여하는 ‘교훈 공모전’으로 확대하고 ‘교훈 변경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TF팀은 5개월간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새 교훈을 확정했다. Y여고 학생회장인 최고은(17)양은 “학생들이 가장 먼저 깨우치고 변화를 추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뿌듯해했다.

전국 상당수의 여중·여고가 교훈으로 삼는 ‘순결’도 개선 움직임이 한창이다. ‘깨끗함’이라는 뜻 이외에 ‘처녀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순결, 성실, 겸양’을 교훈으로 삼아 온 강원의 한 여중은 내년 남녀 공학 전환을 앞두고 57년 만에 교훈을 ‘창의적인 생각, 책임 있는 행동, 꿈을 향한 열정’으로 바꾸기로 했다. 교훈 개정에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뿐만 아니라 동문과 지역사회까지 동참했다.

경기의 한 여고에서는 지난 7월 학생들이 나서서 ‘학교 교훈(순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 404명 가운데 192명(47.5%)의 학생들이 ‘별로’ 또는 ‘매우 별로’라고 답했다. ‘겨레의 참된 어머니가 되자’를 교훈으로 삼아 온 부산의 한 여고도 지난 7월 17일부터 지난 2일까지 78일간 새 교훈 공모전을 진행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교수는 “순결성, 수동성을 여성상으로 강조해 온 교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2018-10-2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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