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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제 아내만 죽은 게 아닙니다”…‘만취운전’에 아내 잃은 남편

“그날 제 아내만 죽은 게 아닙니다”…‘만취운전’에 아내 잃은 남편

이천열 기자
이천열 기자
입력 2023-06-01 10:52
업데이트 2023-06-0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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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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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제 아내만 죽은 게 아닙니다. 저희 가족 모두 다 죽었습니다. 살아있어도 사는 게 아닙니다.”

‘만취운전’ 공무원에게 치어 아내를 잃은 남편은 지난 31일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중학생인 큰아이는 사고 이후 지금까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고, 작은아이는 밤마다 운다”고 말하면서 오열했다.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병원은 모두 가보고, 교수님도 뵙고 백방으로 쫓아다녀 봐도 아직도 아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면서 “피고인(만취운전 공무원)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 많이 반성하고 계신 것 같지만 저는 아무한테도 이런 얘기를 하지 못하고 꾹 참아야 했고, 그로 인해 더 힘들었다”며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운 듯 울먹였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보고도 반성 없이, 계속 (음주운전을)가볍게 여기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다”면서 “우리 가족들이 다시 웃을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다른 가족에게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재판부에서 최소한의 경종을 울려달라”고 당부했다.

남편은 피고인과 합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피고인의 형사 공탁금도 거부했다.

정부세종청사 공무원인 A(39)씨는 지난해 4월 7일 오후 9시 30분쯤 세종시 금강보행교 앞 편도 2차로 도로에서 제한속도(시속 50㎞)의 두 배가 넘는 시속 107㎞로 승용차를 운전하다 1·2차로에 걸쳐 가로로 정차해 있던 B(62)씨의 승합차를 들이받아 7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0.08% 이상) 수준인 0.169%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B씨 승합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여성 C(42)씨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고, 어린이 3명 등 B씨 일가족 6명이 크게 다쳤다. 앞에서 진술한 증인이 C씨의 남편이다.

1일 대전고검에 따르면 전날 대전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나경선) 심리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린 가운데 검찰은 A씨에게 1심 때처럼 징역 8년을 구형했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 받았다.

검찰은 “이 사건으로 한 가족이 어머니를 잃었다. 남은 가족들은 신체적 피해보다 중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으며,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망인에 대한 그리움을 견뎌야 한다”면서 “음주운전은 분명 범죄 행위이고, 사회적 관심과 요구가 큰 만큼 엄정한 형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이날 최후진술에서 “큰 잘못을 저질렀고 아픈 죄를 지었다. 직접 찾아뵙고 사죄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하다”고 말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고위 공직자로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음주·과속 운전을 해 아이들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몬,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도 “B씨 차량의 비정상적인 주행에도 과실이 있어 모든 책임을 A씨에게만 지울 수 없다”고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A씨가 차량 속도를 줄이고 차선을 변경할 때 방향지시등을 켠 점 등을 들어 ‘음주의 영향으로 정상적 운전이 곤란한 상태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뒤 위험운전 치사·상 혐의 부분의 공소를 기각했다.

A씨는 “B씨의 비정상적인 운전을 예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 과실이 없다”면서 “(내가) 제한속도를 지켰더라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1심 판결 직후 검찰과 A씨 모두 항소했었다.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14일 열린다.
대전 이천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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