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표로 대학 서열 매기는 입시업체

배치표로 대학 서열 매기는 입시업체

입력 2013-11-22 00:00
업데이트 2013-11-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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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학교 대학생끼리 갈등 증폭

“‘외영’(외대 경영학과)이 경희경영(경희대 경영학과)보다 낮은 게 말이 됩니까. (입시업체 대표를) 고발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최근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재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허프스 라이프’(hufslife.com)에 올라온 글에 학생들의 격한 댓글이 따라붙었다. 한 입시업체에서 내놓은 배치표에 오류가 많다는 주장이었다. ‘돈 주는 학교들만 올리고 있다’, ‘학교는 뭐하고 있느냐’, ‘입학처는 콧방귀도 안 뀐다’는 등 험악한 글도 보였다.

대입 수험생이 대학 지원 때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배치표를 둘러싸고 대학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배치표는 표준점수와 백분위점수에 따라 개별 대학 학과들의 예상 합격선을 나열한 표다. 지난 7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각 입시업체가 경쟁적으로 배치표를 내놓고 있다. 이에 각 대학 재학생들은 배치표에 따라 대학 학과들 사이에 사실상 ‘서열’이 매겨진다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경쟁 대학을 깎아내리는 일도 다반사다.

입시철이 아니어도 정부재정지원 사업 결과나 사법고시 합격자 등이 발표될 때 자기 대학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우리 학교는 실적이 이렇게 좋은데 왜 경쟁학교에 비해 배치표에서는 낮게 위치했느냐’는 글이 등장하곤 한다.

배치표가 이처럼 대학생들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지만, 정작 일선 고교 등 현장에서는 ‘정확도가 떨어진다’며 배치표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입시업체에서 배치표를 만드는 데 근거가 되는 모집단 수가 수능 시험을 치르는 전체 인원의 10분의1도 안 되는 5만명 전후에 불과하고 대학들에 대한 자료 역시 턱없이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배치표가 대부분 학생부나 대학별고사 성적을 제외한 과거 3∼4년 수능 성적 및 지원 결과 등으로만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배치표의 신뢰성과 객관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지적된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교육연구정보원 전병식 인성진로연구부장은 21일 “사교육업체의 배치표는 아무런 근거 없이 만들어진다”면서 “대학들 역시 자료를 공개하고 있지 않아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교 부장교사 역시 “여러 장의 배치표를 들고 온 학생에게 ‘배치표는 참고만 하라’고 말한다”면서 “배치표를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 된다”고 당부했다.

부정확한 데이터로 대학 간 서열을 조장하고 잡음을 일으키는 배치표의 문제점을 없애려면 대학이 우선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정한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 개인으로선 많은 투자를 해 입학한 대학인 만큼 자신이 속한 대학과 학과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면서 “여기에 정보까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배치표를 두고 이런 다툼이 매번 벌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런 점을 우려해 입시자료를 공개한 대학도 있다. 한양대는 대학 중 처음으로 최근 3년치 수시와 정시 합격자 평균점을 비롯한 입시자료를 최근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했다. 이 대학 배영찬 입학처장은 “수험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배치표가 사실은 입시업체의 배를 불리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사교육 컨설팅도 기승을 부린다”면서 “대학이 학교의 위신을 챙기기 전에 학생들을 위해 자료를 공개하면 다소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3-11-2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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