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때 ‘北총공격’ 제보했다 간첩누명…4억 배상

6·25전쟁 때 ‘北총공격’ 제보했다 간첩누명…4억 배상

입력 2014-06-24 00:00
업데이트 2014-06-2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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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초반 북한 인민군이 총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정보를 우리 군에 알렸다가 오히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홍윤희(84)씨가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이인규 부장판사)는 홍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홍씨에게 위자료 4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1948년 3월 국군에 입대한 홍씨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육군본부 감찰실에서 2등 중사로 복무 중이었다. 전쟁 중 한강 인도교 폭파로 낙오한 홍씨는 가명을 써 북한 인민군 의용대에 자원입대했다.

홍씨는 이후 인민군 위생반에 배속돼 참전하다가 1950년 8월께 북한의 ‘9월 총공세’에 관한 각종 군사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인민군 진영을 탈출해 국군으로 투항한 뒤 이 정보를 전달했다.

하지만 국군은 홍씨가 인민군에 입대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 홍씨가 가혹한 고문에도 간첩 혐의를 자백하지 않자 헌병은 “국군 병력을 탐지하라는 북한 지령을 받았다”고 가짜 신문조서를 만들었다.

인민군 시절 아군과 교전한 혐의로 끝내 재판에 넘겨진 홍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 그는 휴전 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1년 넘게 복역하다가 1954년 10월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홍씨는 당국의 감시와 사찰로 직업조차 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됐고, 결국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홍씨는 80세가 넘은 2011년 6월에야 재심을 청구, 작년 2월 무죄를 확정받았다.

검찰은 법원의 재심 결정에 항고하는 등 홍씨의 유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 한국전쟁사 집필자인 로이 애플먼(Roy E. Appleman)의 문건이 홍씨의 무죄를 명백히 뒷받침했다.

홍씨는 형사보상금을 청구하는 동시에 이번 손배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국가에 소속된 군인들이 홍씨에게 가혹 행위를 하고 허위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 등을 증거로 공소를 제기해 실형을 선고·집행했다”며 “홍씨는 출소 이후에도 불이익한 처우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홍씨가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기간과 정도, 국가의 불법 행위 내용과 중대성, 불법 행위가 일어난 시기와 시대적 상황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별도로 홍씨는 지난 4월 법원에서 형사보상금 2억9천300만원을 인정받았으나 국가는 이 사건 판결 선고까지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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