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조연 20년 주인공에 미련 없어

[프로농구] 조연 20년 주인공에 미련 없어

입력 2011-03-15 00:00
업데이트 2011-03-15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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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프로스포츠 전 종목 최고령… 프로농구 LG 이창수 은퇴

이창수가 떠난다. 오는 20일 창원에서 열리는 전자랜드전이 마지막 경기다. 올해 43세. 프로농구 최고령 선수다. 농구뿐만 아니라 프로 스포츠 전 종목 통틀어 최고령이다. 길고 질기게 버텨 왔지만 떠날 때가 됐다. 지난 11일 은퇴 발표를 했다. 이제 열살씩 어린 후배들 사이에서 이 악물고 버티던 근성을, 단 1분 교체 출전이라도 죽을 힘 다해 달리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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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 최고령 선수인 이창수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씁쓸할 법도 한데 14일 서울 방이동 LG체육관에서 만난 이창수는 언제나처럼 멋쩍은 웃음뿐이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프로스포츠 최고령 선수인 이창수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씁쓸할 법도 한데 14일 서울 방이동 LG체육관에서 만난 이창수는 언제나처럼 멋쩍은 웃음뿐이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얼마 남지 않은 농구대잔치 세대 선수 하나가 또 코트에서 사라진다. 프로농구 LG 이창수가 떠난다.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지요. 운이 좋아 생각보다 오래 뛰었으니 미련은 없습니다.” 이창수는 담담했다.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14일 서울 방이동 LG 전용 훈련장에서였다.

은퇴를 결심한 특별한 이유는 따로 없다고 했다. “떠날 때가 돼서 떠나는 것일 뿐입니다. 힘이 빠져 밀리는 센터는 존재 의미가 없으니까….” 이창수는 말끝을 흐렸다. 모든 게 ‘순리’라고 했다. 젊고 힘 있던 시절은 지나 버렸다. “더 이상 팀에 남는 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때가 왔다. 그래서 조용히, 이창수는 떠나기로 결정했다.

●“1초를 뛰더라도 최선 다하자 다짐”

사실 2년 전, 은퇴 직전까지 갔었다. 2008~09시즌이 끝난 뒤 원소속팀 모비스와 재계약에 실패했다. 당시 40세를 넘긴 시점이었다. 모비스는 이창수를 더 이상 활용가치 없는 선수로 분류했다.

그러나 협상 만료 시한 마지막 날에 LG가 영입 제의를 했다.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후 2년 동안 한 경기 한 경기를 내 인생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1초를 뛰더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항상 다짐했어요.” 이창수는 지난 2년간, 자신의 말처럼 뛰었다. 우직하고도 묵묵히 골밑을 지켰다.

언제나처럼 화려하진 않았다. 상대 빅맨과 부대끼고 버텨내는 게 임무였다. 주연보다는 조연이었던 농구 인생이었다.

●고1때 선수생활 시작·B형간염 등 악조건 이겨내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선수 생활하면서 특별히 내세울 만한 순간도 없고….” 이창수도 주인공이고 싶었던 적은 있었다. 화려한 스타들을 보면서 자괴감도 많이 느꼈다. 팬들 환호의 중심에 서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만약 제가 1인자였다면 지금까지 못 왔을 거 같아요. 모자란 선수였기 때문에 토종 빅맨들이 대부분 사라져 가도 실망하지 않고 버틴 것 같습니다.” 이창수가 희미한 웃음을 보였다. 굴곡 많은 농구 선수 생활이었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농구를 시작했다. 군산고 1학년 시절, 우연히 농구부에 들어가게 됐다. “이전까지 농구 선수는 꿈도 안 꿔 봤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죠.” 모든 게 뒤처졌다. 고등학교 1학년 내내 드리블과 슛 기초를 배웠다.

3학년 돼서야 공식 경기에 처음 나섰다. 선수 생활하는 동안, 기본기 좋은 선수들을 항상 부러워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농구가 몸에 익은 선수들을 따라가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콤플렉스였습니다.” 간염 때문에 2년 동안 선수 생활을 중단하기도 했었다. 1996년 B형 간염 진단을 받았다. 당시 코트 한 바퀴 돌기도 벅찼다. 그러나 이창수는 그런 악조건을 다 이겨냈다. 1997년 말 삼성에서 프로 데뷔했고 이후 누구보다 오래 코트를 지켰다.

이제 이창수는 20년 농구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 은퇴 뒤 꿈이 있다. “죽는 날까지 농구와 함께하고 싶어요. 지도자로서든 아니면 다른 역할로서든….” 43세 이창수에게 농구는 모든 것이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11-03-15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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