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묵념, 워밍업 셔츠에 사진, 지금 세리에A는 ‘안네 프랑크 앓이’

1분 묵념, 워밍업 셔츠에 사진, 지금 세리에A는 ‘안네 프랑크 앓이’

임병선 기자
입력 2017-10-26 09:18
업데이트 2017-10-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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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안네 프랑크다.”

25일(이하 현지시간)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라치오-볼로냐 경기가 진행된 레나토 달아라 스타디움에 입장한 팬들은 이런 문구가 적힌 전단지를 받았다. 전단지 사진은 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의 대표적인 희생자 안네 프랑크가 홈 팀 유니폼 상의를 입고 있는 모습이 합성돼 있었다.

라치오 선수들은 경기 전 몸을 풀면서 특별히 제작한 흰색 셔츠를 걸쳤는데 프랑크의 사진 밑에 ‘반유대주의 안돼’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 22일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린 칼리아리와 라치오 경기 도중 라치오의 서포터 구역에 ‘(라이벌인 AS) 로마 팬들은 유대인들’이라고 적힌 스티커와 프랑크가 로마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합성한 사진이 나붙은 일 때문이었다. 원래 라치오 서포터는 인종차별 구호와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는 것으로 악명 높다.

세리에A가 발칵 뒤집혔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까지 나서 “놀라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로마의 유대인 커뮤니티 대표인 루스 두레겔로는 트위터에 스티커 사진을 올리고 ‘이건 축구가 아니다. 이건 스포츠가 아니다. 반유대주의는 경기장을 떠나라’고 적었다. 비르지니아 라기 로마 시장은 이를 리트윗했고 이탈리아축구협회도 이 사건 조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루카 로티 체육부 장관은 “책임있는 이를 처벌할 것”이라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비난받아야 할 일뿐”이라고 말했다.

클라우디오 로티토 라치오 구단 회장은 서둘러 로마의 시나고그(유대인 회당)를 예방해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비에 헌화하는 등 파문 진화에 안간힘을 썼다. 구단은 매년 200명의 팬을 초청해 100만명 이상의 유대인이 희생된 폴란드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 박물관을 찾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프로축구연맹은 이번 주 모든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1분 동안 프랑크를 애도하는 묵념을 올리기로 하는 한편 프랑크가 다락방에 남겨 나치의 잔인함을 만방에 폭로한 일기 중 한 구절을 낭독하기로 했다. 그 구절은 아래와 같다. (어줍잖게 번역하는 것보다 영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낫겠다.)

“I see the world being slowly transformed into a wilderness, I hear the approaching thunder that, one day, will destroy us too, I feel the suffering of millions. And yet, when I look up at the sky, I somehow feel that everything will change for the better, that this cruelty too shall end, that peace and tranquillity will return once more.”

하지만 유벤투스와 스팔(SPAL) 경기를 응원하던 토리노 서포터들은 묵념 시간에 모여 시위를 했고 일기를 낭독하는 순간 그라운드에 등을 돌린 채 서서 이탈리아 국가를 불렀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상대적으로 라치오 서포터들은 아무런 눈에 띄는 행동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25일(현지시간) 라치오와 볼로냐의 세리에A 경기가 킥오프하기 전에 누군가 ‘우리 모두가 안네 프랑크’라고 적힌 전단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볼로냐 AFP 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라치오와 볼로냐의 세리에A 경기가 킥오프하기 전에 누군가 ‘우리 모두가 안네 프랑크’라고 적힌 전단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볼로냐 AFP 연합뉴스
이탈리아 프로축구 라치오의 마르코 파롤로가 안네 프랑크의 사진과 ‘반유대주의는 안돼’란 문구가 새겨진 셔츠를 걸친 채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다. 볼로냐 AP 연합뉴스
이탈리아 프로축구 라치오의 마르코 파롤로가 안네 프랑크의 사진과 ‘반유대주의는 안돼’란 문구가 새겨진 셔츠를 걸친 채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다.
볼로냐 AP 연합뉴스
이탈리아 프로축구 AS 로마의 라디아 나잉골란이 25일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크로토네와 세리에A 경기를 치르기 전 안네 프랑크 일기 책을 어린이에게 선물하기 전 책장을 넘겨보고 있다.  로마 AP 연합뉴스
이탈리아 프로축구 AS 로마의 라디아 나잉골란이 25일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크로토네와 세리에A 경기를 치르기 전 안네 프랑크 일기 책을 어린이에게 선물하기 전 책장을 넘겨보고 있다.

로마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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