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20대 카페·편의점도 감지덕지…노동법 울타리 밖 10대는 밑바닥 전전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비정규직 노동시장에 뛰어든 20대와 10대가 늘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양극화되고 있다.대학에 재학 중인 20대와 졸업을 유예한 20대, 졸업 후 입사시험에서 낙방한 20대가 대부분 아르바이트 일자리에 몰려 아르바이트 시장은 현재 포화 상태다. 기존에 10대가 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마저 20대가 꿰차면서 나이 어리고 경험도 없는 10대는 밑바닥 노동으로 밀려났다. 저임금의 질 낮은 일자리를 놓고 한창 꿈을 키워야 할 1020세대가 쟁탈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이는 저임금 일자리 고착화로 이어진다.
10일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자 가운데 생활비, 학비를 마련할 목적으로 휴학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7만 3000명에 달했다. 휴학을 경험한 전체 대졸자 가운데 14.2%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20대의 아르바이트 자리는 이제 더이상 과외나 학원 교사 같은 고급직이 아니다. 이런 자리는 명문대 출신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마저 경쟁이 치열해 이력서를 10차례 넣어도 10차례 모두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사 취업만큼 어렵다.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지 못한 대학생은 편의점으로 몰린다. 이전에 10대가 주로 했던 아르바이트 자리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근로기준법을 잘 아는 20대도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고 있다”며 “휴식과 식사 시간을 보장받지 못해도 이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확산돼 사회가 병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에서 밀려난 10대는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일자리로 내몰린다. 배달 대행업체에서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 신분으로 건당 2000원 정도를 받고 위험한 오토바이 질주를 하거나 웨딩홀, 뷔페에서 서빙을 한다. 권혁태 노무사는 “업주들이 10대를 고용하는 것은 불이익을 줘도 군소리 없이 일하기 때문”이라며 “10대에 대한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원유빈 인턴기자 jwyb12@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커피전문점 서류전형 눈물…건당 2000원에 ‘위험한 배달’
‘저임금 알바’ 절망의 20대
‘대기업 정규직’. 지금의 20대에게는 멀어져 버린 단어다.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으려면 인턴 등 저임금 노동을 감내해야 하고, 학자금 대출 때문에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빚을 진다. 이렇게 경쟁을 뚫어도 대기업은 고사하고 중견·중소기업 취업도 어렵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청년 실업률은 9.2%로 1999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저임금 아르바이트 경쟁까지 치열해지고 있다.
졸업을 미루고 취업 준비 중인 대학생 고모(26·여)씨는 아르바이트를 지원한 커피전문점 13곳 가운데 어디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수입이 없는 고씨는 1800여만원의 학자금 대출 원금은 고사하고 매달 6만원 정도의 이자도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겨우 내고 있다.
심각한 취업난에 고씨처럼 졸업을 미루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나 학비를 버는 학생이 늘고 있지만 커피전문점 등 조건이 좋고 인기가 많은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대학생 이승희(24·여)씨는 “커피전문점 10여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연락은 단 한 곳에서만 왔다”며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시급이 높고 근무 조건이 좋아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발간한 ‘서울지역 아르바이트 노동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커피전문점의 평균 시급은 5485원으로 편의점(5397원)보다 100원 가까이 많다. 버는 돈은 큰 차이가 없지만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에 비해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고, 점심시간과 휴게시간도 비교적 잘 지켜지는 편이다. 이씨는 “단순 노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배울 기회도 주어지기 때문에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좀 더 선호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고급 아르바이트에 속하는 과외나 학원 교사 자리는 워낙 많은 학생이 몰리다 보니 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서울 신촌의 유명 사립대를 졸업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업 준비생 이모(28·여)씨는 1주일에 2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30만원을 받는다. 시급으로 따지면 3만원이 넘는 돈이다. 커피전문점의 평균 시급인 5485원의 6배에 가깝다. 그러나 이씨와 같은 대학을 졸업한 김모(27)씨는 “아는 사람의 소개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리 명문대라 해도 쉽게 과외 자리를 구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반면 편의점처럼 선호도가 낮은 곳은 일자리 구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임금수준이 낮아 상당수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서다 보니 순환이 빠른 편이다. 그만큼 업무는 고되고,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다. 서울시 실태 조사에서도 편의점의 시급은 5397원으로 비교 대상 40개 가운데 가장 낮았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취업 준비생 이모(27)씨는 평일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편의점 일을 한다. 이씨의 한 달 평균 수입은 25만원 안팎이다. 과외 아르바이트의 수업 준비 시간을 수업 시간의 2배로 쳐서 시급을 계산해도 곱절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등록금 대출 이자로 7만원을 갚고 나면 남은 15만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이씨는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져 적은 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급한 대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용돈 벌이로만 활용됐던 저임금 아르바이트가 이제는 정규직 고용 시장에서 내몰린 청년 실업자에게 본업이 돼 가는 형태”라며 “아르바이트도 비정규직 노동 중 하나로 분류해 이에 맞는 대책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원유빈 인턴기자 jwyb12@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학업 중단 청소년 10명 중 4명 ‘알바’…20대에 밀려 전단 돌리기 등 육체노동
법 보호조차 못 받는 10대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없어 고통을 겪는 20대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이들은 밑바닥 노동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10대들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낸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 조사 및 정책방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학업 중단 청소년의 아르바이트 참여율은 41.7%에 이른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만 15세 이상의 청소년도 일하는 기간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최저임금, 매주 1일 이상 휴일 보장, 산재보상 등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열악하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않는 돈을 받거나 임금을 떼이는 경우가 많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작성하더라도 근로조건을 빠뜨리는 등 엉터리 계약서를 써 준 업주들이 고용노동부의 근로단속에 적발되기도 한다. 노동부의 청소년 근로권익 침해 행위 조사에 따르면 근로계약서 미작성 적발건수는 지난해 7월 전체 적발건수의 50.8%, 12월에는 39.9%였다. 같은 해 청소년 단체인 ‘청소년 유니온’이 서울고용노동청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호텔과 웨딩홀, 연회장에서 일하는 청소년 가운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이는 74.2%나 됐다.
20대 아르바이트 청년들에게 밀려 편의점 일자리조차 구하기 힘들다 보니 상당수 청소년은 전단 돌리기 등 육체적으로 힘이 들고 임금도 적은 아르바이트로 내몰린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 1월 낸 또 다른 보고서를 보면 청소년이 했던 아르바이트는 조사 대상자 3420명 가운데 전단 돌리기(스티커 붙이기)가 29.8%(1019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음식점 서빙 20.5%(700명), 뷔페 및 웨딩홀 안내·서빙 10.4%(356명) 순이었다.
아예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배달 대행업체에서 일하는 청소년은 대부분 업주와 정식 고용계약을 맺지 않아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사고가 나도 음식점 업주나 배달대행업체 어디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배달 일을 하는 청소년이 잇따라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2011년 일부 피자업체의 ‘30분 배달제’가 사라졌지만, 배달 대행업체의 청소년은 월급 대신 건당 2000~2500원의 수수료를 받고 여전히 위험한 질주를 한다.
배달 대행업체에서 1년 동안 일한 A(18)군은 “주문이 들어오면 우선 그 음식을 구입한 뒤 배달을 하고, 수수료가 포함된 음식값을 손님에게 받는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40~50건을 배달하려면 13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하지만, 오토바이 사용료 6000원과 밥값 등을 빼면 손에 쥐는 돈은 하루 6만원 정도다.
이로사 청소년인권복지센터 상담사는 10일 “업주가 아르바이트 청소년이 배달일을 하다 입은 손해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이른바 노예계약서를 쓰게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2011년부터 청소년들이 노동관계법 위반 사례를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학교 등에 알바신고센터 252곳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으로 상담을 받은 청소년은 723명, 관련 사건 접수는 104건에 불과하다. 노동부 관계자는 “기존의 센터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부터 외부기관 10곳을 알바신고센터로 지정해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감독을 위해서는 청소년을 상대로 노동관계법을 위반하는 업주를 강력 단속,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변호사는 “제대로 된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노동법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형식적인 판단이 아닌 실질적인 고용 관계까지 고려하는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유빈 인턴기자 jwyb12@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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