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날개달린 세상] 겨울숲에 핀 열꽃/탐조인·수의사

[주인의 날개달린 세상] 겨울숲에 핀 열꽃/탐조인·수의사

입력 2024-02-14 02:52
업데이트 2024-02-14 02:5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2024. 1. 경기 고양시 한 야산의 양지니 수컷.
2024. 1. 경기 고양시 한 야산의 양지니 수컷.
올겨울 평소 보기 힘든 양지니와 멋쟁이새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집에서 의정부 가는 대중교통이 모두 없어졌다. 하루 네 번 다니는 버스뿐이어서 그 새들이 있는 국립수목원에 다녀오려면 새벽 첫차를 타거나 서울을 거쳐 의정부나 남양주를 지나야 했다. 왕복 여섯 시간 넘게 걸리는지라 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서울 은평구 봉산에서도 멋쟁이새와 양지니가 관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봉산에는 왔지만 그보다 산이 훨씬 많은 시골인 우리 동네에는 정말 안 온 것인지, 내가 못 찾아서 안 온 줄 아는 건 아닌지 동네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처음 찾으러 들어간 산에서는 아무 새도 보지 못했다. 시간이 문제인지 장소가 문제인지 몰랐지만 어쨌든 장소를 바꿔 보았다. 가는 길에 쇠박새와 작은 새들이 나타나 분주히 돌아다녔다. 나무 사이로는 고라니 둘이 썸을 타는 듯 뛰어갔다. 흔하고 평범한 새들만 보였지만 새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때 뭔가 낯선 소리가 들리더니 예닐곱 마리의 새가 우르르 나타났다. 보기 드문 진달래색,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양지니였다. 양지니들은 나무에 후루룩 내려앉았다가 ‘바쁘다 바빠’를 외치는 앨리스 토끼처럼 얼른 떠나 버렸다.

첫 만남이 너무 짧아 아쉬워하며 언덕 끝까지 새들을 살피러 갔는데, 내려오는 길에 또다시 새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열댓 마리? 다시 양지니였다. 분주하게 우르르 왔다가 조금 뒤 다시 휘리릭 날아올랐는데 양지니 중에서 가장 붉게 잘 ‘익은’ 녀석이 나뭇가지에 앉았다. 내 마음을 알아 준 것일까. “자, 이제 찍어 보라고”라고 하듯 한참을 나뭇가지에서 깃털을 다듬고 쉬더니 “이제 됐지?”라는 듯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날아갔다.

양지니는 홍역 등의 열꽃을 의미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회갈색의 겨울나무에 앉아 있는 진분홍색의 열꽃을 보자 내 마음에서 사랑의 열꽃이 피는 것 같았다. 그후로도 틈만 나면 양지니를 보러 그리로 갔다. 시간이 문제였는지 다음날 한 번 더 보고 보지 못했지만, 이 겨울이 끝날 때까지 나는 계속 그곳을 두리번거릴 테지. 어쩜 마음에 그리움의 열꽃이 피게 해서 양지니인지도 몰라.

이미지 확대
주인 탐조인·수의사
주인 탐조인·수의사
2024-02-14 26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부터 처리하자는 입장을, 국민의힘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는 등 연금 구조를 바꾸는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모수개혁이 우선이다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