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역사감추기 우려보다는 세계유산등록 후광효과 기대 엿보여
일본 정부가 자국 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면서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외면해 논란이 됐는데 이는 추천서만의 문제는 아니라 해당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3일 일본 규슈(九州) 서부의 나가사키만에 접한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의 나가사키(長崎) 조선소 내 사료관을 방문해 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료관은 전시공간을 10여 개 코너로 구분해 시대·주제별로 다루고 있었지만 여기서 조선인 강제 동원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는 일제 강점기에 관한 설명에서 식민지배나 침략 등의 역사적 배경을 배제했고 나가사키 조선소가 건조한 주요 선박이나 기술적인 성취를 주로 부각했다.
’러일 전쟁 후 불황기에도 설비 증강을 계속해 동양 제일의 조선소로서 규모를 갖추게 됐다’, ‘불황 아래에서도 기술 개발·연구를 게을리하는 것 없이 계속해 ’ 등의 문구에서는 제국주의나 군수산업 육성 과정에서 나가사키 조선소가 성장한 것을 자랑하거나 당연시하는 태도마저 느껴졌다.
전시물 중에는 징용 통지서에 해당하는 ‘징용령서’(徵用令書)도 있었다.
그러나 징용 대상자 난에는 한국인이 아니고 일본인임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이름이 기재돼 있었다.
’회사생활’이라는 코너에서는 나가사키 조선소에 1890년에 진보적인 공장규제가 도입되는 등 미쓰비시 중공업이 선진적인 후생복지 제도 등을 유지했다고 소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배고픔에 시달린 조선인 징용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상 소개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현장에서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한반도에서 동원돼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일한 노동자에 관한 전시물이 있느냐고 했더니 ‘워낙 많은 사람이 다 같이 일을 했기 때문에 특정 지역 출신을 따로 구별해서 다루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거나 일본의 가해국이라는 사실에 물타기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느끼게 하는 전시물도 있었다.
사료관은 전함을 따로 소개하는 코너까지 만들어 나가사키 조선소가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세계에서 ‘으뜸가는’ 전함 80척을 건조했다고 밝혔고 어뢰를 전시하기도 했다.
다른 한쪽에는 러일 전쟁 때 러시아 함대의 공격을 받아 훼손된 일본 여객선의 외판 일부가 전시됐다.
지역사회에서는 역사 감추기에 대한 우려보다는 세계유산 등록이 성사될 때 나타날 후광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였다.
나가사키 시의 한 렌터카업체 직원은 세계유산 등록 권고가 내려진 후 예약이 늘고 방문자가 늘고 있다고 체감 경기를 전했다.
차를 타고 한참 이동해야 나가사키 조선소의 끝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지역 경제를 좌우하고 일본 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미쓰비시중공업의 논리가 일본 사회의 역사의식 결여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지울 수 없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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