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트럼프 원색비방’ 1년전과 확 달라졌지만…이번엔 美강경파 타깃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18.9.30
UPI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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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9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신뢰 조치’를 거듭 압박했다.
북미 간 신뢰를 쌓기 위해 대북 제재완화나 종전선언을 비롯한 상응 조치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15분 분량의 연설에서 ‘신뢰’를 강조하거나 ‘불신’을 비판하는 표현만 18차례 사용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완화’ 기조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힌 셈이다.
조만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비핵화 실무협상과 가시권에 들어온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그만큼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 치열한 수 싸움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국가정상급 기조연설이 모두 끝나고 장관급 순번인 데다, 유엔총회 일반토의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주말임에도 총회장의 절반가량 자리가 채워져 대북 이슈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반영했다.
김성 대사를 비롯해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인사들은 물론, 한국 유엔대표부에서도 차석대사급이 참석해 리용호 외무상의 연설을 청취했다.
◇‘신뢰’ 여러 차례 강조…제재완화·종전선언 요구
리 외무상의 연설은 미국의 상응 조치를 요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북한으로서는 그동안 상호신뢰를 높이는 조치들은 충분히 했다고 강조했다. 이젠 미국의 차례라는 뜻이다.
리 외무상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로켓 발사시험을 중지하고, 핵실험장을 투명성 있게 폐기했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에 대해서 확약한 것과 같은 중대한 선의의 조치들을 먼저 취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미국의 상응한 화답이 없었다면서 “미국은 선 비핵화만 주장하면서 강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제재·압박 도수를 높이고 있으며 종전선언 발표까지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더 전향적인 완화 조치를 요구했다.
리 외무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귀중한 평화 기류를 외면하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라며 “핵실험과 로켓시험발사가 중지된 지 1년이 됐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결의들은 해제되거나 완화되기는커녕 토 하나 변한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보리는 국제평화 안전에 도움이 되는 사태 발전을 지지하고 환영하고 고무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지목하진 않았지만, 잇따라 긴급 안보리를 소집해 대북제재 의지를 재확인한 미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유엔사 사령부의 법적 지위도 도마 위에 올렸다.
리 외무상은 “남조선 주둔 유엔군사령부는 북남 사이의 판문점 선언의 이행까지 가로막는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인다”면서 “유엔군사령부는 유엔의 통제 밖에서 미국의 지휘에 복종하는 연합군 사령부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신성한 유엔의 명칭을 도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공격초점 美강경파에 맞춰…트럼프와 분리대응
1년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수위가 낮아졌지만, 최근 대북 외교의 동력이 마련되면서 우호적 기류가 형성된 상황에 비춰보면 대미 압박 수위를 높인 모양새여서 주목된다.
리 외무상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거듭 내세우면서도 “국가 안전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북미 협상 모드를 이어가면서도 ‘협상 파기’라는 최악의 상황이 될 경우 결국은 미국의 책임이라는 논리를 부각한 것으로 해석된다.
공격의 초점을 미국 내 대북 강경파들에 맞춰 트럼프 대통령과 분리 대응한 것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기조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투전꾼’, ‘정신이상자’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부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리 외무상은 “미국의 정치적 반대파들은 순수 정적을 공격하려는 구실로, 우리 공화국을 믿을 수 없다는 험담을 일삼고, 받아들일 수 없는 무례한 일방적 요구를 들고 나갈 것을 (트럼프) 행정부에 강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언급을 잇달아 내놨다.
리 외무상은 “북남 사이의 정치, 군사, 인도주의, 체육문화, 경제협력을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대화가 활성화하고 화해와 협력의 기운이 높아졌다”고 호평했다.
그러면서 “만일 비핵화 문제의 당사자가 미국이 아니라 남조선이었다면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지금 같은 교착 상태에 빠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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