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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8명 품은 거문오름… 세상에 태어나 녹슬어가는게 아름답다[강동삼의 벅차오름]

4468명 품은 거문오름… 세상에 태어나 녹슬어가는게 아름답다[강동삼의 벅차오름]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입력 2023-06-24 00:19
업데이트 2023-06-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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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 용암길 삼나무 숲길은 쉼표다. 제주 강동삼 기자
거문오름 용암길 삼나무 숲길은 쉼표다. 제주 강동삼 기자
존 웨이트(John waite)의 ‘missing you’의 가사는 역설적이다. ‘난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를 너무나 그리워 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두번째 만남이지만, 거문오름이 너무 보고 싶었다. 아마도 일년에 딱 한번만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등산용 카고바지를 입고, 블랙 브이넥 언더셔츠 위에 아웃도어 점퍼까지 걸치고 길을 나선다. 누가봐도 오버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패랭이보다 더 큰 햇빛 차단용 챙모자를 눌러쓰고, ‘태양이 피곤해지기 전’에 일찍 길을 나선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약간 들 뜬 마음인데 애써 숨긴다. 들통나지 않으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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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년에 딱 한번 열리는 비밀의 숲 거문오름
<8>일년에 딱 한번 열리는 비밀의 숲 거문오름


#일년에 딱 한번 5일간 열리는 비밀의 숲…“missing you”라고 솔직히 말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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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조천읍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와 센터 입구에 세워진 세계자연유산 등재 기념 조형물들.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시 조천읍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와 센터 입구에 세워진 세계자연유산 등재 기념 조형물들.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가 2023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국제트레킹 행사를 지난 15일부터 딱 5일간만 열고 있었다. 일년에 딱 한번있는 일. 그래서 더 더욱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떤다.

오전 8시 30분부터 개방하는데 무려 1시간 가까이 일찍 도착했다. 짬을 내 세계유산본부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기념 조형물들과 조우한다. 세계자연유산 등재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네스코 조형물이다. 바닥의 큰 원은 지구, 그 위에 굴곡진 타원은 제주를 상징하는, 그래서 기둥과 두개의 겹쳐진 원은 세계유산의 가치가 영원히 지속됨을 의미하는 조각이다. 유네스코 제주도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2007년), 제주세계7대자연경관(2008년), 유네스코 제주도 세계지질공원(2010년) 등 기념 청동상도 곁에 자랑스럽게 서 있다. 3D 기획전시관에서는 용암동굴들과 제주의 아름다운 명소들을 입체적인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매표소에선 출입카드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앞에선 원두커피, 오름 안내 책자, 등산모 등 소품들을 파는 가판대가 늘어서 있다. 출입증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등산 온 것인지, 쇼핑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여인네들이 지갑 여는 소리가 들린다.

#잉크에 물 한방울 퍼진 듯한 산수국 하늘거리고… 전망대에서는 한라산일대 오름들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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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 곳곳에서 만나는 산수국화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거문오름 곳곳에서 만나는 산수국화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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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라산 일대 오름들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거문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라산 일대 오름들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나홀로 탐방객은 많지 않았지만, 어느 틈엔가 혼자 왔어도 이내 무리들과 섞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탐방객이 줄 잇는다. 나 역시 오름 모임인 듯한 무리들과 저절로 섞인다. 제주의 한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오름을 공부하는 늙은 학생들이란다. 그 중 전망대를 바라보며 오름을 설명하는 하는 교수의 말에 귀기울인다.

유난히 산수국이 많이 자라고 탐방로에서 노 교수는 “수국은 남방식물이어서 북방한계선인 제주에서만 자란다”면서 “다른 지역에선 비닐하우스, 화원에서 자라지만 제주에선 평지에서 겨울을 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구상나무, 비자나무 등 북방식물이 남방한계선에 있는 것과 수국, 문주란 등 남방식물이 북방한계선에 있는 것에서 제주만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거문오름은 2005년에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됐으며, 2009년 환경부 선정 생태관광 20선, 2010년 한국형 생태관광 10모델에 뽑히기도 했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등재 이후 트레킹 행사가 개최되고 있으며 코로나19 여파로 2년 쉬고 올해 15회째를 맞는다.

거문오름은 울창한 수림이 검은 색을 띠고 있어 신비로운 숲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거문오름은 ‘검은 오름’이라 불리다가 지금의 거문오름이 됐다. 전망대에선 한라산 자락에 있는 오름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거문오름은 해발 456m로 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북동쪽 해안선까지 이어지면서 20여 개 동굴을 형성했다. 한 화산에서 이처럼 긴 동굴이 만들어진 예가 세계적으로 드물고, 일부 용암굴에서는 석회굴의 모습까지 보인다. 이런 이유로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고, 2018년에는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굴이 추가됐다.

거문오름 트레킹 코스는 태극길(분화구 내부와 정상부 능선을 따르는 순환코스, 10㎞)과 용암길(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흘러내려간 구간, 6㎞) 등 총 2곳이다. 태극길은 정상(1.8㎞․1시간) 또는 분화구(5.5㎞․2시간 30분), 능선(5㎞․2시간) 코스가 있다.

#해설사와 함께 걷는 태극길 분화구 코스… 물을 품는 오름, 숲을 품는 오름, 그리고 용암을 품는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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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 태극길 분화구 코스를 걷는 탐방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거문오름 태극길 분화구 코스를 걷는 탐방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지난해 용암길만 걸었던 나는 태극길 분화구를 둘러본 뒤 용암길까지 걸을 참이다. 세계자연유산 해설사와 함께 분화구 내를 돌며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코스.

김상연 해설사는 “제주의 오름은 이름을 가진 것만 368개로 어떤 오름은 물을 품고, 어떤 오름은 숲(곶자왈)을 품고, 어떤 오름은 산담을 품는다”면서 “거문오름은 특이하게도 어마어마한 동굴을 만든 용암을 품었다”고 말했다. 이어 “월정리 14㎞ 해안까지 용암이 흘러가면서 1만년전 세월을 거치면서 분리된 동굴 20개 이상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태극길 분화구 코스는 데크와 야자매트로 잘 정비가 돼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였다. 중간중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만들어놓은 군사시설인 일본군 갱도진지(10여곳)를 만날 수 있으며 관상수로 사랑받는 식물인 식나무, 붓순나무 군락지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용암동굴이 수평으로 발달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는 동굴인 수직동굴과도 만날 수 있지만, 너무 위험해 그물 철망으로 굳게 봉쇄돼 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적요가 느껴질 큰 울림이 들린다. 동굴의 길이만도 35m이고 2층 동굴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형성됐다고 한다.

# 멋드러지게 해설하는 김성용 할아버지 해설사의 쉬엄쉬엄 걸어가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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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을 선사하는 풍혈, 고개숙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길, 잎 뒷면에 꽃과 열매를 맺는 새비나무, 진지동굴, 숯가마터, 수직동굴 (시계방향). 제주 강동삼 기자
시원한 바람을 선사하는 풍혈, 고개숙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길, 잎 뒷면에 꽃과 열매를 맺는 새비나무, 진지동굴, 숯가마터, 수직동굴 (시계방향). 제주 강동삼 기자
용암길에 접어들고 얼마 안 지나 1970년대 사라진 숯가마터 앞에서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해설사 김성용씨가 반겨준다. 그는 새비나무를 가리키며 잎을 만져보라고 권유한다. 솜털처럼 부드럽다. 잎 뒷면을 보니 분홍빛 열매가 맺혔다. 수줍은 듯 숨었다. 그러나 살기 위해 꽃을 잎 뒷면에서 피운단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나무를 새롭게 발견이라도 한 듯 탄성을 자아낸다.

멋드러지게 해설하는 할아버지 해설사는 인자한 표정처럼 쉬엄쉬엄 가란다. 걷는게 목적이 아니라 느끼면서 가란다. 그래야 보인다고. 그래야 마음이 치유될 거란다. 오랜 경륜에서 배어나오는 말 한마디에 따뜻해지고, 지친 몸이 가벼워진다. 안도현 시인의 ‘아침엽서’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세상에 태어나 녹슬어가는게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할아버지 해설사의 미소를 보면서 조용히, 조용히, 녹슬어가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니 1만년 동안 흐르다가 멈춤을 반복했던 용암의 빛깔도 세상에 태어나 깊이를 더하며 아름답게 녹슬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전설과 비밀을 신비롭게 감싸안은 숲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햇빛을 거의 차단될 정도로 울창한 숲길을 자랑하지만 걷다 보면 덥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중간중간 서늘한 바람을 느끼는 장소들을 만나는데 바로 ‘풍혈’이란 곳이다. 다량의 낙반이나 암석들이 성글게 쌓여 있는 틈 사이에서 바람이 나오는 곳을 일컫는다. 대기중의 공기는 이 암석들의 틈 사이를 지나면서 일정한 온도를 띠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엔 따뜻한 바람이 나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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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로 공개제한하고 있는 벵뒤굴 입구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국가지정문화재로 공개제한하고 있는 벵뒤굴 입구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용암길을 걷다보면 출입이 제한된 왼쪽으로 방향을 튼 용암은 벵뒤굴(넓은 들판)을 만들었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용암은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을 만들며 바닷가까지 흘러갔다.

용암길을 개방하면서 곳곳에 표시를 해두었는데 1~30번까지 팻말로 시간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14번쯤에 다다른 뒤 조금만 더 가면 벵뒤굴이 나왔다. 넓은 들판 끝 삼나무숲을 만나는 지점에 있다. 보존을 이유로 개방하지 않는 이 동굴은 제주도 용암동굴 중 4번째로 긴 4.5㎞ 동굴로 작은 동굴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복잡한 미로형태를 띠고 있다. 벵뒤굴 내에는 제주도에만 서식하는 곤봉털띠노래기, 성굴통거미 등을 비롯한 37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벌목은 모두를 위한 공존, 삼나무 숲길… 5일간 4468명 비밀의 숲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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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식생이 자랄 수 있도록 벌목한 삼나무 숲길. 제주 강동삼 기자
용암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식생이 자랄 수 있도록 벌목한 삼나무 숲길. 제주 강동삼 기자
벵뒤굴 근처의 울창한 삼나무 숲길이 달라졌다. 지난해 탐방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지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일대 삼나무를 정비해 정수리가 벗겨진 듯 휑하다. 최근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가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거문오름 식생정비지역과 주변 천연림을 모니터링한 결과, 삼나무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미간벌지는 삼나무에 의한 수관의 우거진 정도가 높아 유입되는 햇빛 감소로 하층식생 발달이 낮아 간벌지 및 천연림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는 보고다.

거문오름 식생정비 방법으로 한 번에 제거하는 개벌의 경우 하층식생에 직사광선이 증가해 토양건조로 인한 치수발생 저해와 생장 장해 현상으로 식물종수와 종 다양성이 줄고, 강우에 의한 토사유출과 자연경관 상 좋은 제거방법이 아닌 것으로 판단됐다. 다른 방법으로 일정기간을 두고 여러 차례 조림목을 제거하는 정량간벌에서 변형된 경사방향과 고도방향으로 한 줄씩 제거하는 75% 간벌법을 제안했고, 간벌 시 그루터기를 50㎝정도 남겨 사면경사 침식으로 인한 토사유출을 방지하는 방안을 제시됐다.

세계자연유산 자문단도 분화구 내 인공림을 100% 제거하고 외곽의 인공림은 70% 간벌하는 의견이 나와 도는 2016년 거문오름 식생정비사업으로 분화구 외곽지역 삼나무림을 벌채했다. 모두와 공존하기 위한 ‘숲속의 숲’이 희생하는 듯 하다.

40여분 더 걸었을까. 선인동사거리 부처스인제주주차장에 드디어 도착했다. 선흘방주할머니식당에서 도토리묵을 먹으려고 들어가려 했지만, 대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아쉽지만 그냥 돌아선다. 지난해 여기서 먹은 도토리묵이 몸에서 반응하기 시작했지만, 얼른 삼다수 물병을 대신 입에 댄다. 아쉬움의 10초가 흐르고 어느새 셔틀버스는 원래 왔던 세계유산본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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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세계유산본부는 일년에 딱 한번 5일간만 공개되는 2023 거문오름 국제트레킹 행사기간 동안 4468명의 탐방객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트레킹코스가 시작되는 거문오름 초입의 삼나무숲길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도세계유산본부는 일년에 딱 한번 5일간만 공개되는 2023 거문오름 국제트레킹 행사기간 동안 4468명의 탐방객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트레킹코스가 시작되는 거문오름 초입의 삼나무숲길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한편 도 세계유산본부는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진행된 ‘2023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국제트레킹’ 행사기간 총 4468명이 탐방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했다. 4468명의 눈에 비친 거문오름의 색깔은 무슨 색이었을까.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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