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티날까 봐 맘대로 못허구”… 잊힌 무덤은 다시 수풀에 묻혔다[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단독] “동티날까 봐 맘대로 못허구”… 잊힌 무덤은 다시 수풀에 묻혔다[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입력 2023-09-18 00:05
수정 2023-09-2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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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버려진 무덤
황씨 일가 무연고 묘지 추적기

어쩌다 애물단지 무덤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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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충북 옥천군 야산에 있는 황종구(가명)씨 조부의 묘지를 밭 주인이 바라보고 있다. 해당 묘지는 30여년 전 황씨가 고향을 떠나면서 발길이 끊겨 방치되고 있다. 옥천 한지은 기자
지난 7월 충북 옥천군 야산에 있는 황종구(가명)씨 조부의 묘지를 밭 주인이 바라보고 있다. 해당 묘지는 30여년 전 황씨가 고향을 떠나면서 발길이 끊겨 방치되고 있다. 옥천 한지은 기자
“동티날까 봐(부정 탈까 봐) 맘대로 파지도 못허구…이걸 워치기 헌대유.”

충북 옥천군에서 농사를 짓는 김모(74)씨는 밭에 방치된 무연분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씨의 부모님은 30여년 전 약 2100㎡(약 630평)의 임야를 사들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김씨가 이 밭을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농사를 지으려다 보니 무덤이 나왔다. 언제부터 있던 것인지, 누구의 묘인지 수소문을 해 봤지만 알 길이 없었다. 하필 묘가 밭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밭일을 할 때마다 걸리적거렸다. 묘가 있으니 땅을 개발할 수도, 팔 수도 없다. 김씨는 “군청에 가서 묘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해도 연고자를 찾을 수 없다는 말만 한다”며 “남의 묘를 함부로 건드리는 것도 찝찝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약 220만기. 2021년 기준 전국에 분포한 무연고 묘의 추정치다. 죽은 사람이 태어난 사람보다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본격화되면서 죽는 사람의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반대로 묘를 관리할 후손은 급격히 줄고 있다. 2010년 한국국토정보공사(LX)가 묘지 실태조사 시범사업을 실시한 결과 전국의 총분묘 수는 1434만 9897기로 추산됐다. 그 결과를 토대로 2021년까지 신규 매장 건수를 더하고 개장 건수를 뺀 결과 총분묘 수는 1408만 6943기로 계산됐다. 여기에 시범사업 당시 추산된 15.6% 무연분묘율을 적용하면 현재 전국의 무연고 묘는 219만 7563기로 추정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버려지고 홀로 남겨진 묘들은 산 사람들의 골칫거리가 됐다. 서울신문은 누군가의 자손이자 조상인 묘가 어떻게 무연고 묘가 되는지를 추적하기 위해 장기간 버려진 묘지들의 주인을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옥천군 김씨 밭에 있던 버려진 묘 주인을 알고 있다는 이모(88)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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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충북 옥천군 야산에 있는 황종구(가명)씨 조부의 묘지. 잡목이 자라고 잡초가 무성히 난 버려진 묘지가 밭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다. 옥천 한지은 기자
지난 7월 충북 옥천군 야산에 있는 황종구(가명)씨 조부의 묘지. 잡목이 자라고 잡초가 무성히 난 버려진 묘지가 밭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다. 옥천 한지은 기자
“그거 황종구(가명)네 할아버지 묘야. 아무도 안 가서 묵은 지(버려진 지) 꽤 됐어.”

이씨는 30여년 전 친구 황씨의 부탁을 똑똑히 기억했다. 어려서부터 소꿉친구였던 황씨가 환갑쯤에 갑자기 고향을 떠난다며 묘 관리를 대신해 달라고 했다. 이씨는 간절한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원도로 간다고 나더러 할아버지 묘만 벌초해 달라는 거야. 아버지 묘는 자기가 직접 한다고. 친구 사이의 부탁이니 돈은 안 받았지.”

황씨는 마을을 떠나고 나서도 드문드문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3년 정도가 흐르자 그의 발길이 갑자기 멈췄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연락도 끊기고 나도 몸이 아프다 보니까 10년 전부터는 벌초를 그만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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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친구였던 황종구(가명)씨를 기억하는 인근 마을 최장수 노인 유기현씨. 마을에선 유씨를 제외하고 황씨네 묘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옥천 한지은 기자
어린 시절 친구였던 황종구(가명)씨를 기억하는 인근 마을 최장수 노인 유기현씨. 마을에선 유씨를 제외하고 황씨네 묘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옥천 한지은 기자
황씨의 또 다른 친구 유기현(94)씨는 보다 자세한 가족사를 알고 있었다. 황씨 가족은 남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품삯을 받아 생활했다. 황씨 가족은 유독 명이 짧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황씨가 어렸을 때 사망했고 아버지도 황씨가 청소년이 되던 무렵 세상을 떠났다. 얼마 뒤 어머니도 죽자 그는 부모님을 합장했다.

그는 할아버지와 부모님을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은 뒷산에 따로 묻었다. 자기 땅이 없어서였다. “없이 살던 집에 산이 있나, 땅이 있나…동네 뒷산에 그냥 막 묻어 버린 거야. 그때는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막 갖다 묻었다고.”

소식이 끊긴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그가 죽었다는 부고장이 마을에 도착했다. 타지에서 그가 죽자 묘를 돌볼 사람도 함께 사라졌다. “종구가 늦장가를 가는 바람에 자식들이 어렸어. 내가 애들을 마지막으로 본 게 12~13살쯤이야. 하도 어렸을 때 떠났고, 여기를 한 번도 데려오지 않았으니 기억이 날 리가 있나. 그러니 지금껏 안 찾아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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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구(가명)씨네가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충북 옥천군의 한 마을. 현재는 집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다. 옥천 한지은 기자
황종구(가명)씨네가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충북 옥천군의 한 마을. 현재는 집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다. 옥천 한지은 기자
황씨 일가는 빠르게 잊혔다. 다른 마을 사람들도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갔다. 정착해 살던 사람들도 하나둘 세상을 등졌다. 그후 아무도 황씨 일가가 묻힌 묘지를 찾지 않았다. “나도 20년 전 나무하러 다닐 때나 오다가다 봤지. 지금은 힘들어서 가지도 못해. 가더라도 알아보지도 못할 거야.”

다시 이씨와 함께 황씨 부모님의 묘가 있는 뒷산을 찾았다. 이씨는 수풀이 우거진 곳을 한참을 바라보며 서성였다. 사람 키를 넘는 나무와 수북한 잡초를 보며 생각에 빠진 듯했다. “첩첩산골이라서 이런 게 아냐. 이제 후손들한테 묘를 알려 줘도 관리를 자주 하지는 않잖아. 그러다가 이렇게 풀이 자라 버리면 어디에 묘가 있었는지 잊어버린다고. 그럼 결국 묵은 묘(버려진 묘)가 되는 거여. 참 안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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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이예원
그래픽 이예원
후손들은 점차 조상 묘를 찾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2월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립묘지 안장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38.8%가 조부모까지 장지를 관리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33.4%는 부모까지라고 답했으며, 증조부모까지 관리하겠다는 사람은 16.7%에 불과했다. 아예 관리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 사람도 11.1%였다.

현재 전국에 방치된 무연고 묘지 수는 정확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다. 특히 지역 소멸 위기에 봉착한 농촌으로 갈수록 문제는 심각해진다. 실태조사 시범사업 결과에 따르면 농촌 지역인 옥천군 안남면은 인구 대비 1인당 분묘 수가 3.57기에 달한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의 묘가 더 많은 ‘묘지 천국’이다.

죽어서 방치되는 묘가 늘어나는 건 농촌만의 일은 아니다. 도심 주변에 위치한 공동묘지도 묘소가 증조부대 이후로 넘어가면서 잊히고 방치된다. 후손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거나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 관리가 어려운 경우에도 무연고 묘가 된다.

주민들은 서둘러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안남면 주민 양남귀(70)씨는 “동네 무덤의 절반 이상은 후손들이 찾지 않는 묘”라며 “산마다 주인 모를 무덤이 넘쳐 나지만 자칫 남의 묘를 잘못 팠다가는 문제가 생길까 봐 그대로 방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QR 찍으면 유튜브로

서울신문의 ‘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기획 기사는 ‘유튜브 동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Sb2AsRnT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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