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42년 만에 창고로… 조상님은 떠나기 전 ‘임시 정거장’에 들렀다[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단독] 42년 만에 창고로… 조상님은 떠나기 전 ‘임시 정거장’에 들렀다[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유영규 기자
입력 2023-09-18 00:05
수정 2023-09-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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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버려진 무덤
서울시립승화원 ‘추모의집’
무연고 유골의 마지막 살펴보니

공공이 관리하는 묘지라고 해도 무연고 묘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328개 공설묘지에도 주인 잃은 무덤은 차고 넘친다. 지난해 12월 기준 정부 또는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공설묘지는 총 328개소다. 서울신문은 발길이 끊긴 누군가의 묘지가 어떤 절차를 거쳐 개장되고 그 이후엔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싶었다. 이를 위해 서울시립승화원을 찾았다. 지난 6일 경기 파주 용미리 2묘지에 위치한 무연고 추모의집. 굳게 닫혀 있던 문을 활짝 열자 빼곡히 들어찬 회색의 철제 보관함이 도심 속 빌딩처럼 시야에 들어왔다. 버려진 망자들이 한시적으로 머무는 정거장. 이곳은 1년에 두 번 명절 합동 추모제를 지낼 때,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유족이 분골함을 인수할 때만 가끔 열린다. 무연고 추모의집은 이날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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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광탄면 소재 서울시립용미리제2공원묘지 내 무연고 추모의집. 명절(설, 추석)과 유골을 찾으러온 유족의 요청이 있을 시에만 개방된다. 후손의 발길이 끊긴 버려진 묘지에 있던 유골 2397기가 이곳에 5년간 보관된다. 오장환 기자
경기 파주시 광탄면 소재 서울시립용미리제2공원묘지 내 무연고 추모의집. 명절(설, 추석)과 유골을 찾으러온 유족의 요청이 있을 시에만 개방된다. 후손의 발길이 끊긴 버려진 묘지에 있던 유골 2397기가 이곳에 5년간 보관된다. 오장환 기자
29.7㎡. 불과 9평이 안 되는 원룸 크기의 작은 공간에 2397기의 유해가 머물고 있다. 장기간 연고자를 찾지 못한 망자들은 묘지 또는 봉안 시설에 있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선반 같은 공간에 가로 23㎝, 세로 16㎝의 목재분골함이 층층이 쌓여 있다. 함 속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지만 지금은 까맣게 잊힌 유골들이 담겨 있다.

“대부분 땅에 묻힌 지 최소 30년이 지난 유골이에요. 아무도 찾지 않는…. 2011년과 2019년에 각각 일제 조사를 진행했는데 조사할 때마다 수백에서 천여개까지 무연고 묘가 나오더군요. 그렇게 후손에게 잊힌 분들입니다.” 추모의집으로 안내하던 서울시립승화원 직원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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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광탄면 소재 서울시립용미리제2공원묘지 내 무연고 추모의 집. 후손의 발길이 끊긴 버려진 묘지에 있던 유골 2397기가 회색빛 방 안에 줄지어 놓여있다. 오장환 기자
경기 파주시 광탄면 소재 서울시립용미리제2공원묘지 내 무연고 추모의 집. 후손의 발길이 끊긴 버려진 묘지에 있던 유골 2397기가 회색빛 방 안에 줄지어 놓여있다. 오장환 기자
무연고 묘가 늘어나면서 유골들이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고 있다. 2021년 이전까지만 해도 10년을 안치하도록 했지만 그 후 개장된 유골은 최대 5년간 이곳에 머물 수 있다.

분골함에 붙은 작은 종이엔 고인의 이름, 생년월일, 사망 날짜와 함께 보관 기간이 적혀 있었다. 찾는 이가 없어 지난해 이곳으로 옮겨진 김씨의 유골에 남은 시간은 1230일 남짓이다. 이른바 보관 기간이 지나면 가루가 돼 산골장(화장한 유골을 뿌리거나 시설물 없이 매장)하게 된다. 처음에는 후손이 자주 찾으며 술도 따르고 절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고인을 찾는 사람의 발길도 끊겼다. 이후 이 좁은 공간에서 늦게나마 찾아올지도 모를 후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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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광탄면 소재 서울시립용미리제2공원묘지 내 무연고 추모의 집. 후손의 발길이 끊겨 버려진 묘지에 있던 유골 2397기가 작은 목재분골함 안에 담긴 채 회색빛 방에 줄지어 놓여있다. 오장환 기자
경기 파주시 광탄면 소재 서울시립용미리제2공원묘지 내 무연고 추모의 집. 후손의 발길이 끊겨 버려진 묘지에 있던 유골 2397기가 작은 목재분골함 안에 담긴 채 회색빛 방에 줄지어 놓여있다. 오장환 기자
분골함에 ‘미상’이라고 적힌 유골이 눈에 띄었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비석 등 묘지를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없어 고인이나 연고자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신원 미상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망자가 유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가족에게 돌아간 유골은 153기뿐이다. 한 달에 한 기 정도만이 극적으로 가족을 만나는 셈이다.

이들이 죽고 난 뒤 ‘무연고’ 유해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일까. 서울신문은 서울시립승화원을 비롯해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는 용미리·벽제리·내곡리 묘지를 대상으로 개장된 묘의 사망 연도와 개장 연도를 정보공개 청구했다. 그 결과 유골이 무덤에 묻힌 뒤 연고가 끊기고 다시 개장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41.9년이었다. 자료가 없어 사망 연도를 아예 파악할 수 없는 묘는 제외했다. 가장 긴 시간은 1944년 사망해 76년 만에 개장된 유골이었다. 누군가가 무연고화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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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가운데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은 모두 묘지 사진이다. 왼쪽 2개는 후손들이 잘 관리해 동그란 봉분이 또렷한 묘지다. 반면 오른쪽은 오랫동안 후손의 발길이 끊겨 방치된 묘지로 언뜻 수풀 더미로 보인다. 현재 서울시립승화원 용미리 제1묘지에는 816기의 무연고 묘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장환 기자
사진 가운데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은 모두 묘지 사진이다. 왼쪽 2개는 후손들이 잘 관리해 동그란 봉분이 또렷한 묘지다. 반면 오른쪽은 오랫동안 후손의 발길이 끊겨 방치된 묘지로 언뜻 수풀 더미로 보인다. 현재 서울시립승화원 용미리 제1묘지에는 816기의 무연고 묘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장환 기자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분묘 사용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하면 사용이 취소된다. 취소 결정이 나면 1년 이내에 묘를 옮겨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개장 절차를 진행한다.

서울시가 일제 조사에 나섰던 것은 쌓여만 가는 무연고 묘를 더는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33년 개설된 망우리 묘지는 1973년 일찌감치 만장됐으며 용미리 제1묘지와 벽제리 묘지는 1991년, 내곡리는 1982년, 용미리 제2묘지는 1993년 모두 가득 찼다. 현재는 합장하거나 미리 분양받은 경우가 아니면 추가로 매장할 수 없는 상태다. 서울시설공단은 5년마다 재사용 신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분묘 재사용료 납부 비율은 약 65% 수준이다. 서울시설공단은 “개장 후 추모의집으로 갈 날을 기다리는 무연 분묘가 1735기로 추정된다”며 “향후 개장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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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승화원 용미리제1묘지에 있는 무연고 묘지에 꽂힌 팻말. 무성한 잡초 더미를 걷어내니 오래전 꽂힌 노란색 팻말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장환 기자
서울시립승화원 용미리제1묘지에 있는 무연고 묘지에 꽂힌 팻말. 무성한 잡초 더미를 걷어내니 오래전 꽂힌 노란색 팻말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장환 기자
무연고 묘는 전국 모든 공설묘지가 안고 있는 문제다. 대구시도 2021년 공설묘지 일제 조사에 착수했다. 2002년 대구 달서구에서 한차례 진행한 뒤 19년 만의 재조사다. 현재까지 성서공동묘지에 있는 602기를 무연고 묘로 파악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성서공동묘지는 해방 전인 1937년 조성됐기 때문에 대부분 자손과 연락이 끊기고 고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서 “관리가 되지 않는 무덤이 공동묘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정리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조사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사설 공원묘원과 달리 지자체는 장사법에 따라 무연고 묘를 처리할 수 있는 규정이 있음에도 각 지자체에서는 여전히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세종시 장사업무 담당자는 “오랫동안 찾는 사람이 없으면 무연고 묘로 볼 수 있지만, 유족들이 뒤늦게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개장 절차를 밟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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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이예원
그래픽 이예원
일제시대 등 오래 전 조성된 공설묘지가 적지 않고 묘의 위치와 정보가 부정확해 개장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대전추모공원 관계자는 “대전추모공원은 자연발생한 묘지이기 때문에 묘의 위치와 정보들이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며 “혹시라도 연고가 있는데 없는 것으로 오인해 개장하면 안 되므로 실제 개장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부산시설공단 관계자도 “파묘에 부정적인 한국인의 정서를 고려하면 묘를 쉽게 팔 수 없다”며 “또 묘지가 방대하기 때문에 연고자가 묘지에 왔다 가더라도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분묘를 만들지 않고 유해만 모셔둔 봉안당도 공설묘지와 상황이 비슷하다. 사용 기한이 지났지만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연락이 끊긴 사례가 넘친다. 전국 광역시의 공설 봉안당 현황을 조사한 결과 서울시 4347기, 부산시 4089기, 인천시 1526기, 광주시 700기, 대전시 521기, 대구시 350기가 무연고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만 놓고 보면 전체 8만 3799기 가운데 약 5%인 4347기가 무연고 유골인 셈이다. 울산시 공설 봉안당은 2013년 3월 개소한 이후 사용 기한(15년)이 지나지 않아 무연고 여부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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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시립승화원 용미리제1묘지에 있는 전광판에서 관리비를 2회 이상 미납한 묘지는 사용이 취소된다는 안내가 나오고 있다. 한지은 기자
지난 6일 서울시립승화원 용미리제1묘지에 있는 전광판에서 관리비를 2회 이상 미납한 묘지는 사용이 취소된다는 안내가 나오고 있다. 한지은 기자
공설묘지의 무덤은 장사법에 따라 사용 기한을 30년으로 규정하며 연장 횟수와 향후 처리 방식에 관한 세부 규정이 있다. 하지만 공설 봉안당은 지자체별로 운영 방식이 제각각이다. 예컨대 대구시는 공설 봉안당의 사용 기한을 10년으로 정하고 10년 단위로 두 번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광주시는 봉안당 사용 기한을 15년으로 하고 두 번 연장해 총 45년까지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대전추모공원 관계자는 “상위법인 장사법에 봉안당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이 없기 때문에 시 조례는 공설묘지에 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며 “현장에서는 봉안당도 구체적인 지침을 상위법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부

유영규 부장, 신융아·이주원·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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