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국민공천제 위해 이한구 제동 걸어” 비박계 “정적 치는 고전적 수법에 안 당할 것”
새누리당 4·13 총선 공천이 마침내 진흙탕에 빠져들었다.이번에도 총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살생부가 발단이 됐다. 일부 친박(친박근혜)계 인사가 포함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비박계로 이뤄져 ‘비박 살생부’로도 불린다.
제거하려는 측에서 만들었을 수도, 지키려는 쪽에서 퍼뜨렸을 수도 있지만 결과는 똑같은 이전투구다.
당장 친박계는 발끈하며 논란의 진앙에 선 김무성 대표를 겨냥했다. 살생부의 진위를 떠나 논란 자체가 마치 정권이 공천에 개입한 듯한 음험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다만 진상조사에 초점을 맞추고 전면전은 자제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사태를 더 몰고 가면 양측 모두에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 맏형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공천 학살설은 정말 참담하고 부끄러우며, 이유야 어떻든 당 대표가 (논란에) 있다는 것 자체도 심각하다”면서 “당 대표가 분명히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김태호 최고위원도 “선거를 불과 40여일 앞두고 이러면 통곡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면서 “당 대표가 임명한 공관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와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갈등을 에둘러 언급한 것으로서 사실상 김 대표의 자중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사자인 김 대표는 자신이 정권 핵심으로부터 살생부를 받은 적도, 이를 유포한 적도 없다며 쏟아지는 친박의 공세를 비켜갔다.
김 대표는 “저는 누구로부터 어떤 형태로든지, 공천 관련 문건을 받은 일이 없고 말을 전해 들은 바도 없다”면서 “따라서 제 입으로 그 누구에게도 공천 관련 문건이나 살생부를 얘기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누가 의도했든 살생부 공방은 일파만파다. 심지어 이전투구를 넘어 ‘암전상인’(暗箭傷人·뒤에서 몰래 화살을 쏴 다치게 한다)의 형국으로 접어들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친박계에서는 어차피 공천을 줄 수밖에 없는 서울 험지의 단수신청자인 정두언(서대문을) 김용태(양천을) 의원 등도 명단에 들어 있다는 점에서 ‘자작극’이라는 강한 의심을 품고 있다.
한 의원은 “아마도 명단에 포함됐다는 40여명은 국민공천제를 하자고 난리 치지 않겠느냐”면서 “상당한 주도권을 쥐고 가던 이한구 위원장에게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의원은 “한마디로 자해 공갈”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비박계 한 의원은 “자기 식구 중 약한 고리에 있는 사람 몇 명 치고 정적을 학살하는 것은 고전적 수법”이라면서 “지난 총선에서는 친이계들이 맥없이 물러났지만 이번에는 다르다”고 별렀다.
김 대표의 해명은 진실게임이라는 곁가지로 뻗기도 했다. 김 대표와 따로 만나 그 얘기를 언론에 공개해 이번 사태를 촉발한 정두언 의원이 “실제 들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25일 김 대표가 나를 불러 ‘(살생부에) 정 의원이 포함돼 있다. 겁 안 나느냐’ ‘나는 대표 직인을 안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김재원 의원도 SBS라디오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당 대표가 이른바 친박 실세라는 사람으로부터 40명의 명단을 전달받았다고 하는 얘기가 들리는 것”이라면서 “마치 대통령께서 명단을 만들어 전달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먼저 두 분(김 대표, 정두언 의원) 사이에서 진실이 밝혀져야 그 다음 단계가 확인이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급기야 최고위는 오후에 다시 긴급회의를 소집해 정 의원의 설명을 듣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김 대표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대질 신문’의 모습까지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신경전이 벌어진 최고위원실의 백보드에는 국민 쓴소리를 담는다면서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간다’는 문구가 새로 걸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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