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인신매매로 매춘생활 …한국 왔지만 또다른 악몽이”

“中서 인신매매로 매춘생활 …한국 왔지만 또다른 악몽이”

입력 2016-01-31 16:56
수정 2016-01-3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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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보다 열악한 처우, 탈북자들의 눈물

탈북여성의 눈물
탈북여성의 눈물
“제가 목숨을 걸고 압록강 사선을 넘은 사람입니다. 중국이나 태국에서 가슴 졸이며 지하생활도 했었지요. 하지만 이 땅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의 벽은 도저히 넘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지금은 오히려 홀가분해요. 모든 걸 포기했으니까.”
 서울신문이 만난 탈북자의 상당수는 ‘낙오자’라는 열패감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다. 남한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자유’는 오히려 그들에게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기대만을 키우는 ‘희망 고문’이었다.
 2008년 탈북한 이민정(32·가명·여)씨는 지난해 5월 경기도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 취직했다.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130만원. 그나마 입국 7년만에 북한 억양이 줄면서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해 혼인신고를 한 남편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꿈같은 얘기다.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면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그동안 편의점, 식당, PC방 등에서 일했는데, 탈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대부분 사장님들이 눈빛이 확 달라져요. 그날부터 쫓아낼 구실만 찾고. 월급을 떼어먹는 경우도 여러 번이었어요. 항의라도 하면 ‘네가 누구 덕에 지원금을 받고 이 땅에 발 붙여 사는데’ 라며 오히려 더 화를 냈죠.”
 김진숙(34·가명·여)씨는 2005년 9월 중국에 장사를 하러 갔다가 인신매매를 당해 강제로 성매매를 하게 됐고, 2008년 10월 간신히 탈출해 한국에 왔다. 그는 “저를 받아준 한국에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회사 안에서의 차별은 참기 힘들다”고 말했다. “제가 다니는 공장은 직원이 60명 정도인데 탈북자는 저뿐이에요. 30%는 한국인, 70%는 조선족인데 저는 조선족보다 더 낮은 대우를 받아요.”
 고학력 탈북자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은 억양 및 행동이 ‘탈북자스럽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지기 일쑤다. 2013년 명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정기훈(44·가명)씨는 “인사 담당자는 탈북자여서 탈락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나중에 따로 알아보니 결국 탈북자여서 그랬던 것”이라며 “북한과 한국의 언어 차이가 크고, 업무 용어나 영어는 새로 익혀야 하기 때문에 어렵게 취직을 하고 금방 실직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박미영(32·여)씨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도 취업문이 바늘구멍인데, 우리는 오죽하겠느냐”며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행복한 삶을 꿈꿨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환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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