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벡 약값 대법원 판결… “정부 인하권한 무력화”

글리벡 약값 대법원 판결… “정부 인하권한 무력화”

입력 2013-09-03 00:00
업데이트 2013-09-0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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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값 ‘직권 인하’ 4년만에 무산 확정…환자단체 “정부 소송대응 미흡”

만성골수성백혈병치료제 ‘글리벡’의 가격인하를 놓고 정부와 스위스계 제약사 한국노바티스가 벌인 4년간 법정공방이 복지부의 완패로 끝났다.

대법원은 글리벡 판매사인 한국노바티스가 ‘정부의 약값인하 조처를 취소해달라’며 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보험약가인하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심과 같이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지난 4년간 김앤장이 대리한 한국노바티스에 맞서 정부도 유명 법무법인을 내세웠지만 단 한 차례도 승소하지 못했다. 이번 판결로 약값 조정신청과 이에 따른 약값 직권인하 절차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것이라는 우려섞인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2009년 9월 복지부는 글리벡의 약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환자단체의 의견을 수용, 당시 약 2만3천원이던 글리벡의 약값을 1만9천원대로 깎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환자단체는 약값 조정을 신청하면서 “제약사가 약값의 10%에 해당하는 환자 본인부담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은 약값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복지부 소속 약제급여조정위원회는 이 의견을 받아들여 약가인하를 결정했다.

이는 신약 가격결정 절차에 따라 결정된 약값을 복지부장관이 직권으로 인하한 첫 사례여서 주목을 받았다.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약에 대해 사용자의 ‘조정신청’으로 약값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었다.

한국노바티스는 즉각 약가인하 고시 집행정지와 약가인하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복지부는 한국노바티스와 소송에서 환자단체와 동일한 논리를 폈다.

법원은 복지부의 주장을 일부 수긍하면서도, 그것만으로 글리벡의 약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며 약가인하 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국내 글리벡의 가격이 해외 의약품 선진국 7개국의 공식 약값과 비교할 때 특별히 높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해외 각국에서 실제 거래되는 약값은 공식 약값보다 낮다는 점을 재판부에 설명했지만 실제 거래 가격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의 이번 판결에 따라 약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정부가 직권으로 약가를 내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 최서락 사무관은 “아직 판결문을 보지 못해 뭐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하급심에서 법원은 복지부의 약가인하 재량권 자체는 인정했다”며 “글리벡의 경우에 약값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글리벡의 약값 문제를 제기해온 환자단체는 정부가 처음부터 다국적제약사에 끌려다닌 결과 필요 이상으로 비싼 약값을 지불했으며, 소송에서도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의 안기종 대표는 “해외의 실제 약값 정보는 정부가 노력했다면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글리벡 소송 결과에 따라 약값 조정절차를 통한 약값인하는 무용지물이 된 셈”이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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