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산길을 따라 이어지고, 한 단 한 단 쌓아 올린 석단을 오르면서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부석사의 전경.
박영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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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驛馬)는 아주 피곤한 삶을 사는 말이다. 조선시대 역원제도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관리가 마패를 제시하고 말을 갈아탈 수 있는 역을 30리마다 설치했다. 역마는 정해진 곳 없이 이 역 저 역 전전하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역마살’이라는 말이 여기서 왔다.
어릴 때부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역마살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 면에서 건축가를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무척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자위한다. 전국을 다니며 집을 짓다 보니 강원도 북부에서 제주도까지, 심지어는 목포에서 배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흑산도까지 전국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다니는 중에 공부 삼아 옛집에 자주 간다. 제일 많이 간 곳이 절, 그중에서도 영주 부석사이다. 지금쯤 부석사에 가면 은행잎이 떨어져 황금을 깔아 놓은 것처럼 쌓인 길을 따라 절로 들어갈 수 있다. 소백산 가파른 경사를 거스르지 않고 앉은 문이며 탑이며 누각이 차례로 나오다 마지막에 고려시대에 지은 무량수전을 만나는 감동은 특별하다. 특히 올라가 뒤를 돌아볼 때 펼쳐지는 소백산 연봉의 장엄한 화음은 눈에 담기에 마음에 담기에 부족해 안달이 날 정도이다.
부석사뿐이 아니다. 우리의 절들은 오랜 시간이 건축물에 내려앉아 있어, 그 시간이 만들어 놓은 장엄함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그 절들은 대부분 정해진 규칙이 없이(겉으로 보기엔) 자연의 지형에 잘 맞게 건물을 배치했다. 가람배치라고 이름을 붙여 부르는데, 땅의 결을 거스르지 않으며 저마다 이야기가 있고 의미가 덮여 있다. 어떤 대상에서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그 대상의 절대적 아름다움일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 너머 깃든 의미에 공명하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의 본질은 어디론가 들어가는 일이다. 그 지향점이 천국일 수도 있고, 마음의 안식을 주는 이상향일 수도 있다. 그리고 들어가서 무언가를 만나는 일이다. 절대자를 만나기도 하고 같이 걸어 줄 친구를 만나기도 하며 종국에는 나 자신을 만난다.
부석사에 가면 산길을 따라 올라가며 이어지는 풍경과 한 단 한 단 쌓아 올린 석단을 오르며 중생 세계에서 보살 세계를 거쳐 부처의 세계까지 오르게 된다.
공주 마곡사도, 울진 불영사도, 구례 화엄사도 모두 지형에 맞는 배치와 그에 따른 종교적 의미를 땅 위에 입혀 놓았다. 어려운 불경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그 가르침을 몸 안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럴 때 건축은 물리적 조형 이전에 어떤 생각이고 어떤 마음이며 또한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닝보(영파)에 간 적이 있다. 오래된 도시라 다양한 유적과 고건축을 많이 봤다. 송나라 때 지었다는 천년고찰 보국사는 경사가 급한 산 위에 지어졌는데, 건물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높이 올라가도록 한 그 공과 그 기술이 아주 인상 깊었다. 다만 지형에 직교하는 선을 긋고 건물을 앉히는 방식 즉, 자연을 수치로 환원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와는 사뭇 다른 자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다스리고자 기술을 발휘한 건축을 하는 것과 땅의 결을 읽어 내고 그 결대로 건축하는 것 모두 인간의 지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후자가 좀더 자연과 공생하고자 하는 자세라 생각한다.
가람 전체를 현대식 개념과 구조로 구현한 최초의 불교사찰인 제따와나 선원. 부석사처럼 중생의 단에서 시작해 점점 상승하며 보살의 단을 거쳐 마침내 부처의 단에 도착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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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따와나 선원은 우리가 설계한 현대식 불교사찰이다. 강원 춘천 남쪽 끄트머리에 북한강과 홍천강이 만나 큰물을 이루는 곳에 자리잡았다. 어느 날 승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스님 한 분이 사무실을 찾아와 “춘천 박암리라는 곳에 절을 짓겠다”고 했다. 땅을 가 보니 세 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오랜 시간 사람들이 개간해 밭을 일구고 있던 장소였다.
‘제따와나’(Jetavana)라는 말은 ‘제따(Jeta) 왕자의 숲’이라는 뜻이다. 석가모니가 가장 오래 머문 사찰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 사찰의 일부 영역을 현대건축으로 구현하는 사례는 있지만, 이렇게 가람 전체를 현대식 개념과 구조로 구현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한옥이 아닌 콘크리트로 뼈대를 세우고, 40만장의 벽돌로 벽과 바닥을 마감한 절의 외관은 무척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 사찰은 꼭 한옥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행정절차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는 석가모니가 한옥에서 살았던 적은 없다는 반론을 펼치기도 했다.
구례 화엄사의 길을 원용한 제따와나 선원의 전경. 법당을 향해 세 번 꺾으며 들어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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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정신으로 지금 가장 보편적인 재료와 구법으로 현대의 삶을 담되, 바닥에는 전통 가람배치 방식을 따랐다. 그리 깊지 않은 땅에 깊이 들어가는 길을 설계하고자 다녀 본 사찰 중에서 구례 화엄사의 길을 원용했다. 그 길은 세 번 꺾으며 들어가는데 꺾어질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열리고 새로운 층위에 도달하게 된다. 중생의 단에서 시작해 점점 상승하며 보살의 단을 거쳐 마침내 부처의 단에 도착한다. 돌아서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온전한 자신과 만나게 되는, 불교 본연의 정신을 찾는 선원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
종교의 본질은 어디론가 들어가 절대자를 만나기도 하고 같이 걸어 줄 친구를 만나기도 하며 종국에는 나 자신을 만나는 것, 또한 그곳에서 돌아서 걸어온 길을 바라보는 것이다.
노은주·임형남 부부 건축가
노은주·임형남 부부 건축가
2024-11-13 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