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폭주’…패전국 멍에 벗기에 올인

아베의 ‘폭주’…패전국 멍에 벗기에 올인

입력 2013-08-14 00:00
업데이트 2013-08-1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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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환경 변화 업고 우경화 행보…역풍 직면할 수도

“연합국 측이 승자의 판단에 따라 단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3월1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태평양 전쟁 책임자들을 단죄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 대해 밝힌 소신이다.

패전 68주년인 올해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에 담긴 속내는 이 한마디에 집약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은 커녕 제국주의 열강 간의 ‘땅따먹기’ 와중에 단지 일본이 졌을 뿐이라는 인식에 다름없다. 이는 비단 아베의 생각만이 아니다. 그의 외조부로 A급 전범 용의자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를 포함한 일본 우익의 골수에 박힌 세계관이다.

아베 총리가 목표로 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및 헌법 9조 개정, 무라야마(村山) 담화 수정 등은 결국 침략 전쟁을 저지른 대가로 부과된 ‘벌칙’과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서의 무력행사 포기, 군대보유 포기, 교전권 부정 등 패전국으로서 지게 된 전후체제의 멍에를 떨치고 정상국가로 나아가려는 행보인 것이다.

이는 일본 주변의 안보환경 변화와도 무관치 않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역량을 갈수록 늘려가고 있고, G2(주요 2개국)로 부상한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을 놓고 본격적으로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또 국방비 삭감 기조 속에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한 미국은 일본이 아태지역 방위와 관련해 더 큰 역할을 맡아 주길 바라고 있다.

주변 상황은 아베 총리가 뜻을 실현하는데 유리해 보인다. 우선 일본 대외정책의 최대 변수인 미국은 미일동맹과 관련한 일본의 역할 확대를 바라고 있다. 또 한국, 중국을 제외한 여러 아시아 국가들은 역내에서 중국의 급속한 세 확대를 견제하면서 일본에 마음의 문을 여는 양상이다.

일본 내부적으로도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중·참의원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야당은 지리멸렬하다.

또 전쟁 세대가 건재했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평화헌법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들이 많았지만 아베를 포함한 전후 세대들이 사회 주도세력이 된 지금은 오히려 일본의 경제력에 걸맞은 힘을 갖춰야 한다는 견해가 세를 형성하고 있다. NHK가 지난 9∼1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찬성(29%)이 반대(22%)보다 많았다.

이제 아베가 주도하는 일본의 우경화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지느냐가 문제다. 아베의 입장에서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내년까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를 매듭지은 뒤 종전 70주년인 2015년 ‘아베 담화’로 무라야마 담화를 대체하고, 임기 안에 평화헌법 개정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세간의 예상이다.

이들 목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베가 변화한 안보환경에서 충분한 수준의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만족할 것인지, 경제력에 상응하는 군사대국의 길을 가려할 것인지가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우경화 현안의 성패를 좌우할 변수는 주변국들의 견제, 국내 경제 상황 등을 들 수 있다.

우선 한국과 중국으로서는 일본이 최악인 한일, 중일 관계를 그대로 둔 채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및 개헌을 추진한다면 수수방관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일본이 동맹국에 대한 공격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반격하는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게 되면 자위대는 이론상 세계 어디서든 미국의 요청만 있으면 무력을 쓸 수 있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에 제3자인 일본이 개입할 근거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며, 중국을 자극함으로써 동북아 안보지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다.

이미 아베 총리는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지난 4월 국회 발언으로 한중의 큰 반발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런 터에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철저한 반성없이 주변국과 갈등을 일으켜가며 민감한 안보 현안들을 일방추진한다면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경계하는 국내외 여론의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

또 ‘아베노믹스’의 성패, 소비세 증세 등 민생 현안에 발목잡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에 압승을 안겨준 민심이 아베 총리의 역사·안보 공약보다는 경제 정책의 가능성을 주목한 측면이 강한 만큼 경제가 순탄치 않으면 논쟁적인 안보 및 역사 현안들을 밀어붙이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사바 유키(淺羽祐樹) 야마구치(山口) 현립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침략의 정의’를 언급한 대목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아베 총리가 그 발언 이후 파장이 일자 ‘역대 역사인식 관련 담화의 계승’을 언급한데서 보듯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며 전후 국제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폭주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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