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 6일째 모스크바 공항 체류…美-러 비공식 협상 지속에콰도르, 대미 무역특혜 포기하면서도 망명 허가 결정은 미뤄
미국 정보기관의 개인정보 수집 프로그램을 폭로하고 홍콩에 은신하다가 러시아로 도피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전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29) 사건이 교착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스노든이 홍콩을 떠나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해 환승구역에 몸을 숨긴 지 28일(현지시간)로 엿새째가 됐지만 사태의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스노든이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그의 행보를 둘러싼 관련국 간의 협상과 신경전만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 美, 러시아에 ‘스노든 인도’ 지속 요구 = 러시아 정부 관계자는 27일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에 스노든 문제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노든이 선처를 기대하고 미국에 항복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래서 모스크바 공항 환승 구역을 떠나지 않고 러시아에 입국하지도 않고 있는 것”이라며 “러시아도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스노든 문제와 관련) 미국 정부로부터 러시아로 공식 요청이 온 것은 없다”며 “외교 채널 등의 비공식 접촉을 통해 스노든을 체포해 넘겨달라는 요청이 있긴 했지만 이것이 러시아가 어떤 심각한 조치를 취할 만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같은 교착 상태는 어떤 나라 정부가 스노든에게 망명지를 제공한 뒤에야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그럼에도 “현재의 상황은 러시아에 더 유리하고 미국엔 불리한 국면”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러시아에 스노든 인도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벤 로즈 미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이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 중인 세네갈에서 한 브리핑을 통해 “스노든은 미국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미국 정부가 말소한 여권을 가지고 여행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스노든을 추방하고 그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다른 나라와 협력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이 러시아 정부와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美-에콰도르-베네수엘라 신경전 치열 = 스노든이 정치 망명을 신청한 남미의 대표적 반미국가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는 그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27일 미국의 위협이 스노든과 관련한 에콰도르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에콰도르가 스노든 문제에서의 단호함을 과시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받아오던 무역 특혜 조치를 스스로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관련, “미국이 무역 특혜 조치를 철회하겠다고 우리에게 위협을 가했다”면서 “우리의 존엄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이며 우리는 일방적으로 이 특혜 조치와 그 이상의 것을 포기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레아 대통령은 한 발짝 더 나가 미국 내의 인권 보호 조치를 강화하기 위해 지원금을 낼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미국이 인권 문제에서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우리는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이를 위해 인권이 훼손돼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에콰도르 정부는 스노든이 자국에 입국하거나 해외에 있는 자국 공관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그에 대한 정치적 망명 부여 문제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단호함을 보이면서도 스노든을 받아들일 경우의 손익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서 숙고를 계속하고 있는 모습이다.
스노든의 예상 망명지 가운데 하나인 베네수엘라도 미국의 위협과 관계없이 그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날 스노든을 받아들여 인도주의적 보호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거듭 밝혔다. 앞서 마두로 대통령은 스노든이 베네수엘라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면 그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궁에서 개최한 언론인 시상식에서 연설하면서 “아직 누구로부터도 스노든을 위한 정치적 망명처 제공 요청이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이 젊은 친구가 인도주의적 보호를 필요로 하고 스스로 베네수엘라로 오겠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이 용감한 사람을 인도주의적 방식으로 보호할 준비가 돼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린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