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포퓰리즘…내년 유럽각국 선거서 도미노 이어지나

브레이크 없는 포퓰리즘…내년 유럽각국 선거서 도미노 이어지나

입력 2016-12-05 09:24
업데이트 2016-12-0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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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美대선 이어 伊 선거서도 광풍 위력…오스트리아 대선선 ‘주춤’

대중 영합주의를 뜻하는 포퓰리즘이 대서양 양안을 오가며 파죽지세로 힘을 키우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전 세계에 존재감을 드러낸 후 미국 대선으로 위력이 한층 배가된 포퓰리즘 바람은 다시 대서양을 건너 이탈리아까지 집어 삼키며 그야말로 광풍으로 타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반감을 주요 동력으로 삼은 브렉시트로 서막을 울린 뒤 미국 대선에서 여성과 소수 인종 등 사회적 약자에 막말을 일삼던 도널드 트럼프를 당선시키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포퓰리즘은 4일 치러진 이탈리아 국민투표마저 접수했다.

그나마 이탈리아 국민투표와 나란히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중도좌파 성향의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72) 전 녹색당 당수가 극우 후보를 누르고 당선을 사실상 확정 지음으로써 두 나라가 동시에 포퓰리즘에 희생되는 악몽은 면했다.

이탈리아는 마테오 렌치 총리가 정치적 생명을 걸고 추진한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의 벽을 넘지 못하며 서구 주요 국가 중 영국, 미국에 이어 포퓰리즘 도미노에 쓰러진 세 번째 나라가 됐다.

상원의 수를 줄이고 권한을 축소해 정치 체계를 간소화하고, 비용을 줄이는 한편 중앙 정부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지방 정부와의 행정 중복과 악명높은 관료주의를 철폐하자는 명분으로 치러진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정권을 심판하는 성격으로 변질되며 부결됐다.

개헌안은 올 초만 하더라도 60%에 육박하는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었으나 포퓰리즘 성향의 제1야당 오성운동을 필두로 극우 성향의 정당 북부리그 등 야당들이 똘똘 뭉쳐 기성 정권을 심판하는 투표로 몰아가며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됐다.

반이민, 반세계화 정서에 편승해 지난 6월 현실화된 브렉시트가 이탈리아 국민투표 분위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됐고,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더욱 부추기며 이탈리아 공화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헌법상 변화로 평가되는 이번 개헌안은 폐기 처분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번 국민투표 부결로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선 오성운동과 북부리그 등 포퓰리즘·극우 정당이 이탈리아에서 더욱 기세를 올릴 가능성이 커졌다.

렌치 총리가 약속대로 사임해 2018년으로 예정된 총선이 내년으로 앞당겨지면 창당 7년의 신생 정당인 제1야당 오성운동이 집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회의적인 오성운동은 집권 시 유로존 잔류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브렉시트에 이어 EU 불안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탈리아 정치권은 오성운동에게 유리한 것으로 인식되는 현행 선거법을 국민투표 직후 손볼 것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어 현재 30% 안팎의 지지율로 집권 민주당과 비슷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오성운동이 실제로 수권 정당이 될 확률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트럼프가 반 이민, 반 세계화라는 시대 조류를 등에 업고 당선된 만큼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올해 들어 17만1천 명이 넘는 역대 최대의 난민이 쏟아져 들어온 이탈리아에서 난민에 대한 피로감이 깊어지고, 자칫 이민자에 의한 테러라도 날 경우 현재 13%의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극우정당 북부리그가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유로존 탈퇴를 넘어 아예 EU를 떠나는 이탈리브(Italeave)를 주장하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 북부리그 대표는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국민투표에서 ‘노’에 투표하는 것은 유럽의 규칙과 규정에 대한 ‘노’가 될 것”이라며 EU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국민투표 부결을 계기로 이탈리아 북부에 국한된 정당의 지지 기반을 중부와 남부 등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EU로서는 이탈리아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중도 좌파 성향의 판 데어 벨렌이 EU를 떠날 것을 주장하는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 자리를 사실상 예약한 것이 위안거리다.

호퍼가 당선돼 오스트리아까지 EU 탈퇴를 거론하는 국면을 맞게 되면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에 이은 충격파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등 포퓰리즘 열풍 속에 반(反)이민, 반 EU를 주장하는 호퍼가 비록 상징적인 자리지만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2018년 총선에서는 나치 부역자들이 세운 자유당이 제1당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영국 BBC는 “내년 선거를 앞둔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에서 반이민, 반주류 기치를 내건 포퓰리즘이 세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나온 오스트리아의 선거 결과는 매우 놀랍다”고 평가했다.

인구 870만명의 오스트리아는 작년에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난민 12만여명을 수용해 독일, 스웨덴과 함께 가장 큰 부담을 지며 난민에 대한 반감이 빠르게 퍼지고 있으나 나치에 점령된 아픈 역사에 대한 기억이 나치 부역자가 창립한 자유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저지하는데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스트리아에선 주춤했지만 포퓰리즘의 유럽 본토 상륙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한 이탈리아를 장악한 포퓰리즘은 내년에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까지 세력을 넓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3월 총선이 예정된 네덜란드에서는 여론조사 결과 헤이르트 빌더스가 이끄는 극우 정당인 자유당(PVV)이 중도우파 여당인 자유민주당(VVD)과 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어, 포퓰리즘 바람이 불 경우 집권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도 집권 사회당 정부의 지지율이 바닥을 맴돌면서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가 이끄는 극우와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 후보가 나서는 보수의 대결로 압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4연임 도전을 선언한 내년 가을 독일 총선에서도 난민 대규모 유입과 이민자 출신의 테러 등 범죄행위로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틈타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약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 타임스는 3일 “중도에 기반을 둔 전통 정당들을 포퓰리즘 세력이 대체하는 현상이 유럽 전역에서 나타나며 보편적인 지혜와 유럽의 전후 질서가 도전받고 있다”며 “국경과 이민,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유럽적 가치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에서 차례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CNN방송 역시 “트럼프의 승리에 유럽의 포퓰리즘이 자극을 받으며 한때 정치적 변방에 국한됐던 극우, 국수주의 정당, 반유럽 정당들이 이제 전통적인 정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치 전면에 나서고 있다”며 향후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도 포퓰리즘에 포섭된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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