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에든버러 주택 마루 아래 135년 된 ‘병 속의 메시지’가 들려준 얘기

에든버러 주택 마루 아래 135년 된 ‘병 속의 메시지’가 들려준 얘기

임병선 기자
입력 2023-01-09 07:10
업데이트 2023-01-09 07:13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지역 역사학자 제이미 코스토피네가 뜯긴 마룻바닥, 메시지가 든 병, 메시지 액자 등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BBC 홈페이지 인용
지역 역사학자 제이미 코스토피네가 뜯긴 마룻바닥, 메시지가 든 병, 메시지 액자 등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BBC 홈페이지 인용
지난해 11월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빅토리아 왕조 때 지어진 주택 작은방의 마룻바닥 아래에서 ‘메시지가 든 병’이 발견됐다. 배관공 피터 앨런이 발견했는데 메시지 맨 위에 두 남자의 이름, 존 그리브와 제임스 리치가 남겨져 있었다.

1887년 이 집이 지어졌을 때 소목장이(가구장이)로 참여했던 둘이 합쳐 11명의 자녀들을 부양하는 가장들이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영국 BBC가 지난 7일(현지시간) 전했다.

135년 된 타임캡슐에 담긴 메시지를 풀기 위해 역사학자, 계보학 서비스 파인드마이패스트(Findmypast) 등이 인구 센서스 결과와 함께 수십 개의 신문 아카이브 등을 뒤져 두 사람의 가족사는 물론 이 집을 거쳐간 많은 이들의 발자취도 밝혀냈다.

레이스 출신의 그리브는 당시 43세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인 이사벨라와 여섯 자녀, 존(16) 제임스(11) 벳시(8) 애니(6) 조지(4) 앤드루(1) 등을 부양하고 있었다. 에딘버러 올드타운 안 리들스 클로즈에 살았는데 모닝사이드에 있던 문제의 건물로부터 걸어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리브는 1906년 9월 28일에 62세 나이에 만성 질환에 시달리다 세상을 떴다.

리치는 당시 34세로 미들로티안의 론헤드 태생이었다. 이 건물 공사에 참여한 두 번째 목공이었다. 집은 근처 리버턴의 하이 스트리트에 있었으며 아내 메리와 함께 다섯 자녀 로사나(15) 윌리엄(14) 제임스(12) 메리(6) 헬렌(6개월)을 기르고 있었다.
피터 앨런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인용
피터 앨런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인용
두 사람은 이 건물의 아래층 담당이었는데 둘이 어울려 메시지를 작성한 뒤 빈 위스키 병에 메시지를 넣어뒀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룻바닥을 깔았으며 위스키를 마시지는 않았으며 “누구라도 이 병을 발견하면 우리의 먼지가 도롯가에 날릴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고 적었다.

이 건물은 이듬해 1월 완공돼 로버트와 매리 핀레이슨 부부에게 팔렸다. 부부는 네 자녀와 함께 입주했는데 제임스(8) 존(7), 한살 쌍둥이 매리와 로버트와 함께였다. 로버트는 당시 50세로 천일염, 기름, 염료 상인이었다. 물론 비교적 부유했고 아는 연줄이 많았으며 1892년 여름에 보닝턴 하우스로 휴가를 떠났다는 소식이 현지 신문에 게재될 정도로 유명했다.

그리브와 리치는 이 방이 하인들 방으로 쓰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1891년 두 여인이 이 방을 쓰고 있었다. 리지 레이드란 간호사가 어린 쌍둥이를 돌본 것으로 보이며 케이트 러펠이 여러 집안일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리지는 피페의 번티슬랜드에서 1869년 태어났으며 이 집에 이주했을 때는 22세였을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제임스와 제인 할아버지네와 지낸 것으로 보인다.

케이트는 1870년 런던 그린위치에서 태어나 입주 당시 21세였다. 양초 만드는 제임스 러펠과 아내 제인이 기르던 다섯 딸 중 막내였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려고 에딘버러로 옮겨오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로버트 핀레이슨은 이 집에 입주한 지 몇 년 안 된 1893년 52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는데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사업은 망했고, 1901년 매리와 네 자녀는 에든버러의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보험회사 간부인 토머스 H B 블랙이 아내 에밀리, 세 자녀와 함께 이 집에 이사 왔다.

그랬다가 1912년 그랜트 가족이 사들인 뒤 다시 1940년대 아치발드의 에니스 로버슨 목사가 두 번째 부인 위니프레드와 이 집 주인이 됐다. 로버슨은 1870년생으로 스코틀랜드의 1000m 이상 봉우리를 뜻하는 먼로 282개를 모두 오른 최초의 등반가로 여겨진다. 휴 먼로 경이 명명했는데 로버슨은 1889년부터 1901년까지 이를 모두 발 아래 뒀다. 마지막 봉우리 미올 디아르(Meall Dearg)를 오른 뒤 케른(cairn, 스코틀랜드 고유의 다리 짧고 체구가 작은 견종)에게 먼저 입을 맞춘 뒤 아내에게 입을 맞춘 일화가 전해진다. 부부는 이 집을 1950년대 매각했다.
에일리드 스팀프슨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인용
에일리드 스팀프슨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인용
두 목공이 남긴 병 속의 메시지가 이 집을 거쳐간 많은 이들의 얘기를 들려준 셈인데 젠 볼드윈 파인드마이패스트의 가족사 전문가는 “과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매력넘치는 목소리들”이라며 “마룻바닥 까는 일을 마무리하는 축하를 할 겸, 그들이 도롯가에 먼지로 흩날릴 시점에 대해 철학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 역사학자 제이미 코스토피네는 “과거를 깊이 들여다보면 보통사람들의 값어치를 잴 수 없는 얘기들이 즐비하다”며 “우리는 이제 그 바닥, 그 병 위를 지나간 모든 아이들과 사람들, 이 집에서 만들어진 그들의 기억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들이 당시 지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젠트리로 나중에 기억되고 위스키병에 든 작은 메시지로 불멸의 존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 집에 사는 에일리드 스팀프슨은 “그 노트 뒤에 숨은 역사를 듣게 돼 정말 좋다”면서 “우리 집의 역사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며 두 목공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 집을 거쳐간 이들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