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쓸 때 저의 상처·트라우마 들여다봐요”

“글 쓸 때 저의 상처·트라우마 들여다봐요”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6-06-05 17:32
업데이트 2016-06-0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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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금희 두 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 펴내

보통의 삶서 튕겨 나온 사람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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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지난해 신동엽문학상과 젊은작가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문단의 재능 있는 이야기꾼으로 떠오른 김금희 작가는 내년 봄부터 연재할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그는 “개인이 갖고 있는 상처가 어떻게 혐오로 작동하게 되는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혐오’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올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지난해 신동엽문학상과 젊은작가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문단의 재능 있는 이야기꾼으로 떠오른 김금희 작가는 내년 봄부터 연재할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그는 “개인이 갖고 있는 상처가 어떻게 혐오로 작동하게 되는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혐오’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평일 한낮 패스트푸드점에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다면. 당신의 눈엔 어떤 표정이 떠오를까. ‘이 나이대 남자가 한낮에 여기 와 있다는 건 뭔가 비정상이라는 얘기였다. 백수이거나 명예퇴직자이거나 취업 준비생이거나 하는, 무슨 말을 붙여도 비극적인 뉘앙스가 사라지지 않는 상황이라는 얘기였다.’(13쪽)

소설가 김금희의 두 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문학동네)는 이렇게 ‘정상’ 혹은 ‘보통’의 삶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들을 응시한다. 표제작 ‘너무 한낮의 연애’의 필용은 문책성 인사로 대기업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 직원으로 밀려난다. 순간 그가 떠올린 건 미국 유학을 꿈꾸며 어학원을 다니던 16년 전 드나들었던 종로의 맥도날드다. 인생 최대의 위기에서 왜 하필 그 장소였을까. 필용은 그에게 햄버거 씹듯 사랑을 고백하고 껌 뱉듯 사랑의 중단을 선언했던 양희 때문이란 걸 깨닫는다. 왜 사랑이 없어졌냐고 물어뜯듯 다그치는 필용, 뒤이어 부끄러움에 일그러진 필용에게 양희는 말한다.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이 순간을 김금희 소설의 요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첫째, 사회의 트랙, 사람들의 인정 밖으로 밀려난 이들 안에 의연함, 순정함이 반짝인다는 것. 둘째, 그를 다독이고 지켜보는 타인의 시선이 연민과 온기를 머금고 있다는 것이다.

“제 첫 소설집에서는 ‘연민’이라는 단어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두드러져요. 제가 소설로 보여 주고 싶은 것도 결국 연민과 사랑이에요. 우리는 연대라는 게 가능하다고 믿고 싶어 해요. 살면서 그런 순간들과 분명 마주쳤거든요.”

처절하고 눅진해야 할 상황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이런 말이 하고 싶었던 거죠. ‘이 시스템이 잘못돼 있는 거야. 사회의 트랙 위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뭔가 모자란 사람들도 아니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불쌍하지도 않아. 왜 명랑하고 담담하냐고? 원래 그래. 그 정도의 수입이 없다고, 그 정도의 위치가 아니라고, 그 지역에 살지 않는다고 너네 생각처럼 우울하게 살고 있지 않아’라고요.”

트랙 위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의 열패감을 ‘다정한 무심함’(강지희 문학평론가)으로 지켜볼 수 있는 데는 작가의 경험이 재료가 됐다. 대학 시절 따돌림당하며 받은 상처,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둘 때 느꼈던 ‘지고 나온 느낌’, 함께 직장에 채용됐다가 수습 기간이 끝나고 잘린 동료에 대한 부채 의식 등이 ‘세실리아’, ‘조중균의 세계’ 등에 녹아 있다.

“예술이란 건 자기 상처를 파서 완성하는 면이 있잖아요. 제가 예술적인 소설을 쓰는 게 아닌데도 글을 쓸 때면 제 상처, 트라우마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상처들을 작동시키다 보면 결국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생각, 그건 결국 우리의 무수한 선택과 방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죠.”

작가는 일상을 견디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누군가에게 ‘왜 이렇게 됐습니까, 괜찮습니까’ 묻고 싶어진다고 했다. 타인에 대한 이런 곡진한 물음으로 뽑아져 나오는 소설로 그는 독자들 곁에 선다. 언제 봐도 부끄럽지 않고, 비웃지 않는 나무처럼.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6-06-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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