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새누리→민주로 자고나면 주도권 뒤바뀌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조성된 살얼음판 정국이 흡사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연일 ‘막장성 요소’를 가미한 반전드라마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사실 지난달 31일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6월 임시국회 일정을 합의할 때만 해도 메인 이슈는 진주의료원 국정조사였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은 아니었다.
그러다 불과 며칠 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려는 검찰에 황교안 법무장관이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의도 정가는 서서히 예열단계에 진입한다.
결국 원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불구속 기소되자 민주당은 국정원 국정조사에 당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새누리당은 수세에 몰린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전·현직 국정원 직원을 매수한 의혹과 국정원 여직원을 불법 미행·감금한 혐의에 대한 수사가 완료돼야 국정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버텼지만 명분에선 크게 밀리는 모양새였다.
여야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20일 국정원이 보관 중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을 새누리당 단독으로 열람하면서 무게추가 다시 기울었다.
새누리당이 노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매개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한 것이다. 국정원 국조를 앞세워 새누리당을 코너로 몰던 민주당은 다시 주춤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NLL 포기 논란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라고 한 주장이 허위임을 밝히기 위해 회의록 발췌본 공개를 추진한 것이라고 절차적 정당성을 애써 주장했다.
경위야 어떻든 결과론적으로는 박 의원이 반격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그러잖아도 6월 호국보훈의 달에 민감한 안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민주당은 다시 수비하는 위치가 됐다. 극적인 공수교대였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안보불감 정당’으로 규정하며 압박했고, 민주당은 회의록 공개의 위법성을 제기하며 팽팽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이어 24일 국정원이 대화록 전문을 전격 공개하면서 새누리당은 확실한 주도권을 쥐는 듯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를 포기한 것이 입증됐다”며 쾌재를 부르는 듯 했으나, 전문과 발췌본 사이에 일부 차이가 드러나면서 시중 여론이 반드시 새누리당에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이튿날인 25일 새누리당은 그동안 손사래를 쳐오던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하게 된다.
더 큰 반전은 26일에 나왔다.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이던 권영세 주중대사가 “집권하면 NLL대화록을 까겠다”고 한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민주당이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게다가 같은 날 대선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당 회의 석상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을 대선 전에 입수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화를 자초했다. 민주당이 다시 ‘대화록 정국’의 큰 물결에 올라탄 것이다.
민주당은 현 정부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 전모가 드러났다며 맹공을 퍼붓고, 새누리당은 녹취록의 신빙성에 의구심을 던지면서 ‘방어모드’에 들어간 상태다.
여야 모두 이렇게 어지럽게 전개되는 상황에 자당 의원들이 중요한 고비에서 ‘자살골’ 같은 발언을 하는 것에 경계심을 표출하며 입단속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이와 함께 여야가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축하면서 “반역의 대통령”, “연산군과 뭐가 다른가” 등 자극적인 표현들이 쏟아져 나오는 등 각본없는 ‘대화록 반전드라마’는 ‘막장성’ 요소까지 곁들여 결말을 알 수 없는 상태로 굴러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