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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기도합니다…나도 곧 갈 테니 편히 쉬라고”

“매일 기도합니다…나도 곧 갈 테니 편히 쉬라고”

입력 2013-01-26 00:00
업데이트 2013-01-2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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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치매 아내 우발적 살해한 79세 남편, 국민참여 재판서 징역 3년

“아내를 사랑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묻혀 있는 곳을 떠올리며 매일 기도합니다. 나도 때가 되면 그곳으로 갈 테니 편히 쉬면서 나를 기다려 달라고….”


25일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된 서울 남부지법 406호. 증인석에 앉은 쑥색 수의 차림의 노인 이야기에 법정 안은 숨죽인 듯 조용했다. 듬성듬성한 백발에다 깡마른 체구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가슴속 이야기를 토해 낸 듯 한마디 한마디 힘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떨림이 있었다.

지난해 10월 19일 오후 9시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한 아파트 8층 거실에서 치매를 앓던 아내 조모(당시 73세)씨를 목졸라 숨지게 한 이모(79)씨는 ‘현재 어떤 심정이냐’는 검찰 측의 질문에 “아내를 먼저 보내고 따라가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아내 조씨는 2008년부터 기억력 감퇴 등의 증세를 보이다 2010년부터 치매를 본격적으로 앓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 치매가 더욱 심해진 아내는 이씨가 외도를 한다고 의심하고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했다.

1987년부터 여러 차례 큰 수술을 할 때마다 아내를 간병해 온 이씨는 아내가 치매 증세를 보인 뒤에도 정성껏 돌봤다. 이씨는 “외출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수도권 일대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아내 손을 잡고 새벽 기도를 다니고 하루 24시간 아내 곁에서 함께했다.

하지만 아내의 증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밤이면 더욱 심해졌다. 20년간 함께 살며 시부모를 모셔 온 며느리에게 심한 말을 하거나 손자들 앞에서도 이씨에게 거친 욕설을 했다. 1년 전에도 견디다 못한 이씨가 베란다에서 투신하려던 것을 아들이 말려 그만둔 적도 있었다. 요양을 권할 때면 조씨는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느냐”면서 완강히 거부했다.

사건 당일도 아내는 이씨가 바람을 피운다며 한 시간 넘게 욕을 하고 폭행했다. 거실로 자리를 피한 이씨를 따라 나온 아내가 “부모 없이 막 자란 놈”이라고 욕을 하자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읜 상처를 가진 이씨는 순간 화를 참지 못했다. 아내를 넘어뜨린 뒤 이씨는 “같이 가자. 내가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야. 애들 짐 덜어 주는 거야. 이 길밖에 없어”라고 말하며 목을 졸랐다. 1963년 결혼해 50년간 함께해 온 부부의 비극적인 마지막 순간이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부장 김용관)는 이날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5년형을 구형했었다. 재판부는 “생명의 가치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이 존귀하므로 어떠한 행위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면서도 “고령화 사회에서 가족 내 문제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유사 범죄의 재발을 방지할 필요가 있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2년 가까이 치매 걸린 아내를 헌신적으로 병수발해 오던 중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 다른 가족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피해자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려 한 점, 가족들이 선처를 원하는 점과 고령의 나이를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2013-01-2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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