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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모자란다니…” 혈액 수급 비상에 달려온 시민들

“피가 모자란다니…” 혈액 수급 비상에 달려온 시민들

입력 2016-01-12 17:12
업데이트 2016-01-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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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코스로 ‘헌혈의 집’ 선택…점심시간 직장인들 발걸음 이어져

“올겨울도 헌혈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 혈액 부족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헌혈하는 분들이 적네요.”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와 학교 겨울방학 등으로 헌혈이 줄어 혈액 재고 부족으로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에 12일 아침 찾은 서울역 앞 ‘헌혈의 집’은 아직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서울역 2번 출구 앞에 자리 잡은 헌혈의 집 주변에는 헌혈 마스코트 ‘나누미’를 비롯해 헌혈을 독려하는 3개의 안내판이 있었고, 창문에도 ‘급구, A형 O형’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어 시민의 관심을 호소했다.

헌혈의 집 안은 포근했지만 6개 헌혈용 침대 가운데 단 한 곳에만 사람이 누워 있을 뿐 나머지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오늘의 혈액 보유 현황’ 상황판을 보니 A형과 O형 혈액 보유량이 이틀치가 채 못돼 ‘경계’ 단계였다. AB형은 2∼3일치로 ‘주의’, B형은 3∼4일치로 ‘관심’ 단계로 표시돼 있었다.

헌혈의 집 성종은(33) 간호사는 “적정 혈액보유량은 5일치”라면서 “보유량이 심각하게 부족한 A형과 O형뿐 아니라 AB형과 B형 혈액 역시 적정 보유량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서울역 주변은 유동인구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 지하상가가 발달하면서 지상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줄었다. 스마트폰으로 열차 예매를 하는 사람이 늘면서 표를 끊고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에 헌혈하는 사람도 줄어들었다고 간호사들은 입을 모았다.

다만, 서울역 앞에 있어 휴가 나온 군인이 많이 찾고, 대학생과 인근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헌혈하는 경우가 많다고 간호사들은 귀띔했다.

10분여간 채혈을 한 뒤 침대에서 내려온 김하림(21)씨는 “며칠 전 혈액이 부족하다는 문자를 받고 마음먹고 있다가 시간을 내서 회사 근처 헌혈의 집을 찾았다”며 “피가 모자라 수술 등으로 수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안되지 않느냐”며 수줍게 웃었다.

김씨는 소파에 앉아 준비된 음료수와 간식 등을 먹으며 수분과 영양을 보충하고 안정을 취했다.

오전 내내 썰렁했던 헌혈의 집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찾는 사람이 하나 둘 늘었다.

장민호(42·자영업)씨도 김씨와 마찬가지로 헌혈 독려 문자메시지를 받고 업무 시간을 쪼개 헌혈의 집을 찾았다고 했다.

55차례 헌혈 경험이 있다는 장씨는 “고등학교 때 가까운 분의 가족이 심장 판막수술을 하면서 피가 모자라 병원에서 헌혈한 이후 꾸준히 헌혈을 실천하고 있다”며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생각에 주기적으로 헌혈의 집을 찾는다”고 했다.

‘데이트 코스’로 헌혈의 집을 택한 마음 따뜻한 커플도 있었다.

남창현(28)씨는 “여자친구가 며칠 전 혈액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함께 헌혈하러 가자고 해 오늘 둘이 같이 왔다”면서 “작년에도 둘이 함께 헌혈한 적이 있었는데, 함께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수혈을 마치고 남씨를 기다리던 장은혜(24·여)씨는 “며칠 전 A형과 O형 혈액이 많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마침 내가 A형이고 남자친구는 O형이어서 주저하지 않고 달려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헌혈의 집을 나가면 맛있는 점심으로 영양 보충을 하고, 헌혈한 당일인 만큼 많이 움직이지 않고 헌혈 선물로 받은 영화표로 극장에서 영화를 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 헌혈의 집을 찾았지만, 몸 상태 때문에 발걸음을 돌리는 시민도 있었다.

딸 설지은(15) 양의 손을 잡고 헌혈의 집에 들어온 김윤경(45·여)씨는 문진·기초검사 결과, 철분 수치가 낮게 나와 당일 헌혈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혈액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딸과 함께 남대문시장에 가는 길에 들렀는데, 헌혈을 할 수 없어 아쉽다”며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설양은 “엄마 아빠가 모두 헌혈을 열심히 하신다”면서 “나도 헌혈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가족과 함께 꼭 헌혈 봉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몸이 약해 헌혈을 못하다 이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헌혈하고 뿌듯해 한 여성 직장인도 있었다.

이숙정(33·여)씨는 “철분 부족 등으로 항상 헌혈을 할 수 없다는 얘길 들어 속상했었는데, 작년 말 건강검진에서 헌혈할 수 있는 정도로 관련 수치가 개선됐다는 말을 듣고 오늘 기념으로 헌혈의 집을 찾았다”며 즐거워했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적십자사 등 혈액 당국은 최근 국내 혈액 재고가 2일분 수준까지 급락하자 이달 8일 말라리아 유행지역에서도 헌혈을 한시적으로 허용키로 하는 등 시민들의 헌혈을 독려하며 혈액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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