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부, 숨겼던 의붓딸 냉대…친모, 천덕꾸러기 딸 ‘분풀이 학대’

계부, 숨겼던 의붓딸 냉대…친모, 천덕꾸러기 딸 ‘분풀이 학대’

입력 2016-03-23 12:07
업데이트 2016-03-2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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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미혼모였던 친모 한모(36·지난 18일 사망)씨가 안모(38)씨와 결혼하면서 보육원에 숨겨뒀던 딸 안모(당시 4살)의 존재를 뒤늦게 남편에게 알리고 ‘불안한 동거’에 들어가면서 이미 잉태됐다.

그 존재를 전혀 몰랐던 의붓딸이 결혼과 함께 등장하자 계부 안모(38)씨는 적잖이 당황하고, 황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두 사람은 2010년부터 동거에 들어갔다고 이듬해 7월 결혼했다. 한씨는 결혼을 3개월 앞둔 4월에야 비로소 보육원에 딸이 있음을 고백하고 데려와 함께 살 것을 제안했고, 안씨는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숨진 한씨가 남긴 메모와 안씨를 상대로 한 경찰 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안양이 집에 오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그 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졌다.

한씨는 중고생들이 쓰는 얇은 노트 5권 분량에 자신과 남편, 학대 끝에 죽은 딸 등 불완전한 가족 구성원 3인의 갈등을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했다.

갈등은 당연히 자신의 피가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의붓딸을에 대한 계부 안씨의 냉대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인다. 딸이 거짓말을 한다며 혼내는 의붓 아버지로 인해 집안에서 언성이 커졌고, 이를 지켜보는 한씨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 딸에 대한 원망이 점차 커졌다.

남편이 딸을 손찌검까지 하는 걸 지켜보면서 한씨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후회했는지도 모른다.

딸을 냉대하는 남편을 지켜보며 맘이 편치 않았던 한씨는 점차 한편으로는 남편을 원망하게 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의붓아버지에게 미움의 빌미를 주는 딸에 대한 미움이 커지는 복잡한 심경에 빠져 들게 됐을 것이다.

그는 남편에 대한 극한의 원망을 노트에 담아 고스란히 남겨뒀다. 경찰은 “한씨의 노트 곳곳에 남편에 대해 극도로 원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남편에 대한 증오는 곧 원인 제공자였던 딸에 대한 가혹행위로 이어졌다. 한씨가 남긴 노트에는 숨진 딸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매를 댔다는 거짓말을 했다가 남편 안씨에게 혼났던 일, 숨진 안양을 폭행한 일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고, 남편 안씨가 게임에 빠져들면서 가정 내 갈등은 악화일로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안씨와 한씨 사이에 새로운 씨앗이 잉태되면서 ‘천덕꾸러기’ 안양은 집안에서 더욱 불편한 존재가 되어갔다. 부부가 안양을 평택의 고아원에 맡기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온전치 않은 가정의 비극적 종말은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어느 날 운명의 날이 도래했다. 그날도 4살배기 딸은 바지에 오줌을 쌌고, 만삭의 몸이었던 한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물을 받아둔 욕조에 안양을 혼내키며 머리를 집어넣었다 빼기를 3~4차례 반복했다.

한씨가 잃었던 이성을 되찾은 것은 찰나였다. 저항하던 딸의 몸에서 힘이 쭉 빠지면서 미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온갖 구박에도 영원히 할 것 같았던 딸의 몸은 이미 싸늘히 식어 있었다.

제정신을 차렸지만 한씨는 끝까지 제대로 된 어미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남편 안씨에게 애원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말렸다. 뱃속에 출산이 임박한 새 생명이 있다는 이유였다.

부부는 숨진 안양의 시신을 2~3일 집 베란다에 두고 처리를 고민하다 야밤을 틈타 야산에 암매장했다. 이승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안양은 부모로부터 존중받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5년을 은폐해왔던 진실은 장기 미취학생 전수 조사 과정에서 들통이 났다. 딸에 대한 죄책감과 수사망이 조여 오면서 한씨는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택했다.

그는 “내가 잘못해 딸을 죽였다”며 “하늘에 가서 죽은 딸에게 부모로서 못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유서를 남겼으나 어미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을 속죄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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