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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치료 상추 ‘흑하랑’ 쑥쑥… 농가·기업 새 소득 모델 창출 [농산업 미래성장 이끌 그린바이오]

불면증 치료 상추 ‘흑하랑’ 쑥쑥… 농가·기업 새 소득 모델 창출 [농산업 미래성장 이끌 그린바이오]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입력 2023-11-01 01:26
업데이트 2023-12-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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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 영농조합법인 나비팜의 김철환 대표와 장서우(오른쪽) 전남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가 지난 25일 긴장 완화와 불면증 해소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 상추 ‘흑하랑’을 재배하는 밭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장 연구사는 8년의 노력 끝에 흑하랑을 개발했다. 강주리 기자
전남 함평 영농조합법인 나비팜의 김철환 대표와 장서우(오른쪽) 전남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가 지난 25일 긴장 완화와 불면증 해소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 상추 ‘흑하랑’을 재배하는 밭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장 연구사는 8년의 노력 끝에 흑하랑을 개발했다.
강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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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전남 함평에서 흑하랑 상추가 자라고 있다.  강주리 기자
지난 25일 전남 함평에서 흑하랑 상추가 자라고 있다. 강주리 기자
그린바이오 산업은 식물을 포함한 천연물과 식품소재, 생명공학기술이 융합한 산업이다. 과거에도 신품종 개발이 농업 지도를 바꾸고는 했지만 그린바이오 산업 영역에서 신품종이 개발되면 연구·개발부터 생산, 가공, 마케팅 등 새 생태계가 형성된다. 이전에는 없던 소득 모델이 탄생하는 것이다.

국산 토종 상추에서 수면 유도 물질을 추출해 만들어 ‘천연 불면증 치료제’로 불리는 기능성 상추 ‘흑하랑’은 상생 모델을 만들어 가며 대중화되고 있다. 공공기관의 연구 성과가 재배 농가로 이식되고 농가가 키운 상추를 다시 티백, 양갱, 젤리스틱 등 소비자 기호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생산된 상품들은 수출길을 모색하게 된다.

흑하랑 상추를 개발한 전남도농업기술원 원예연구소의 장서우 농업연구사는 31일 “2011년부터 토종 식물 자원의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기 위해 작물을 찾았다”면서 “상추를 먹으면 잠이 잘 온다는 구전에 착안해 상추에 들어 있는 수면 유도 기능성 물질인 ‘락투신’을 추출하고 이 물질을 늘린 상추를 개발하는 데 매달렸다”고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직전 해인 2010년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총회에서 ‘다른 나라가 소유한 생물 자원을 이용할 때는 사전 승인을 받거나 로열티를 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나고야 의정서가 통과되면서 우리 식량안보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에 시작된 개발이다.

품종 개발에 착수한 지 8년 만인 2019년 장 연구사는 기능성 상추인 흑하랑의 품종 등록과 제품화에 성공했다. 잎이 흑빛을 띠는 흑하랑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숙면을 유도하는 락투신 성분이 일반 상추(g당 0.03㎎)의 124배(g당 3.74㎎)에 달한다. 이 성분 때문에 쌉싸름한 맛이 난다.

기술원은 도내 기업과 농가에서 대대적인 흑하랑 재배에 나섰다. 전남 화순·함평 등 5곳에 시범단지를 만들었고 지난해에는 원료 생산 전문 특화단지를 조성해 농가 20곳에서 육묘·재배를 했다. 130㎝까지 자라는 흑하랑의 잎과 줄기를 한꺼번에 베는 기계 수확으로 노동력은 25% 이상 절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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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의 한 카페에서 판매하는 흑하랑 샌드위치와 샐러드.
전남 순천의 한 카페에서 판매하는 흑하랑 샌드위치와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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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 전 지점(17개)에서 계약 재배 형태로 판매되고 있는 기능성 상추 ‘흑하랑’이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진열돼 있다. 전남도농업기술원 제공
현대백화점 전 지점(17개)에서 계약 재배 형태로 판매되고 있는 기능성 상추 ‘흑하랑’이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진열돼 있다.
전남도농업기술원 제공
제품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기업들과의 협업이 이뤄졌다. 수면제 부작용 우려를 덜어 주는 안전한 수면 유도 식품이라는 인식이 퍼진 끝에 현대백화점과의 계약 재배가 성사됐다. 일반 상추보다 5배 비싼 가격에 계약 재배를 하면서 매출이 급등했다. 현재 현대백화점 17개 전 지점에 흑하랑이 납품된다.

휴롬 등과의 공동 연구도 활기를 띠었다. 흑하랑의 숙면 효능을 하나씩 입증한 뒤 성과는 ‘새근새근 주스’ 제품 개발로 이어졌다. 흑하랑에서 락투신을 추출해 티백·양갱 등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한 휴온스 등 8개 기업의 매출 총액은 지난해 45억원에 달했다. 30개 농가가 이 기업들의 위탁을 받아 지난해까지 30㏊에서 누적 500t을 계약 재배했다.

기술원과 농가, 기업체가 합심해 시장 수요에 대응하고 조기 제품화를 이루면서 2019년 2종에 그쳤던 흑하랑 제품은 30종으로 늘었다. 한류 열풍 속에 K브랜드 가치가 올라간 덕에 티백은 미국·일본·중국에, 양갱은 프랑스와 일본에 수출됐다. 이수화학은 지난 3월 스마트팜과 연계해 흑하랑 가공 제품을 호주 현지에 생산 판매하기로 했다.

함평에서 올해부터 흑하랑을 농가로부터 위탁 생산받아 티백으로 가공·판매하는 차(茶) 제조업체 ‘천지운’의 장범기 전무는 “기술원을 통해 일본 업체가 수출 제의를 해 와 2억원어치를 팔았다”면서 “그린바이오의 경쟁력은 흑하랑처럼 원료가 좋아야 하는데 기술원이 제공한 종자로 농가가 직접 재배해 인근 기업이 대량 수매하니 가성비가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람회에 가면 한국 브랜드에 대한 외국인들의 신뢰도가 높아 제품에 한국산 지리적 표시를 하면 수출에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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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하랑 티백으로 우려낸 차 모습. 강주리 기자
흑하랑 티백으로 우려낸 차 모습. 강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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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하랑 상추로 만든 티백차 제품. 강주리 기자
흑하랑 상추로 만든 티백차 제품. 강주리 기자
처음부터 산업화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기 때문에 농가 역시 더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를테면 9917㎡(3000평) 부지에서 흑하랑을 재배하는 위탁 농가 ‘나비팜’은 기계 수확을 위해 고랑을 잘 파는 데 신경 쓴 모습이었다.

김철환 나비팜 대표는 “양파는 1년에 한 번 수확하지만 흑하랑은 서너 번 수확하는 데다 잎·줄기까지 다 쓰니 매출이 양파의 3~4배가 된다”고 말했다.

기술원은 흑하랑 품종을 보호하기 위해 흑하랑만의 ‘유전자 지문’(염기서열)을 찾아내 오는 12월 지식재산권인 품종보호권을 등록(마커)할 예정이다. 중국 등에서 흑하랑을 몰래 팔거나 자신들 것이라 우길 때를 대비해서다. 건강기능식품으로 등록하기 위해 품질 표준화 작업도 하고 있다. 다만 내년도 신규 사업 연구개발(R&D) 예산(국비 90억원)이 전액 삭감되면서 흑하랑 수면 기능성 원료 개발과 인공지능(AI) 기반 수면 진단 슬립테크 등 연관 산업 육성에는 제동이 걸렸다.

박홍재 전남도농업기술원장은 “부작용 없는 식물성 소재로 국민 수면 건강이 실현되면 5조 4000억원의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라면서 “의약 산업화까지 확장해 지역 자체 개발 품종인 흑하랑이 지방 소멸에 대응할 농촌 재생 주체로 자리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농림축산식품부의 ‘FTA 분야 교육홍보사업’ 지원으로 기획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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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재배기에서 자라고 있는 기능성 상추 ‘흑하랑’ 모습. 순천 강주리 기자
식물재배기에서 자라고 있는 기능성 상추 ‘흑하랑’ 모습. 순천 강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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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의 밭에서 키가 120㎝ 안팎으로 자라면 잎과 줄기대를 기계로 한꺼번에 재배하기 위해 흑하랑 상추 좌우로 고랑이 파여져 있다. 강주리 기자
전남 함평의 밭에서 키가 120㎝ 안팎으로 자라면 잎과 줄기대를 기계로 한꺼번에 재배하기 위해 흑하랑 상추 좌우로 고랑이 파여져 있다. 강주리 기자
함평 강주리 기자
2023-11-01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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