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유가 환경, 1986년·1998년과 비슷…당시 배럴당 10달러로

현재 유가 환경, 1986년·1998년과 비슷…당시 배럴당 10달러로

입력 2015-12-21 09:22
수정 2015-12-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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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들 경제위기로 수요감소…산유국 증산으로 공급과잉

이달 들어 배럴당 40달러 아래로 떨어진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불과 3주만에 35달러가 붕괴할 정도로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이는 1986년이나 1998년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WTI는 당시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들의 제살깎기식 경쟁 때문에 배럴당 10달러대까지 추락해 지난 30년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당시 세계 경제는 지금처럼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 속 신흥국발 경제위기로 수요가 꺾인 상황이었다. 아울러 적도 부근의 수온이 평년 기온보다 높아져 이상기온이 나타나는 엘니뇨 현상이 발생했던 점도 공통점이다.

산유국들은 1∼2년간 ‘치킨게임’을 계속하다가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온 뒤에야 감산에 합의했다.

1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월물 WTI 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22센트(0.6%) 낮아진 34.73달러에 마쳐 2009년 2월18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 1986년과 1990년대 후반에도 신흥국 위기·공급과잉·엘니뇨

21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원유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내분에 빠진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들의 현 상황은 1986년이나 1997∼1999년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산유국들은 그때 당시와 마찬가지로 경제위기로 인한 수요감소 상황에서도 감산을 기피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세계경제는 미국의 금리가 폭등하는 와중에 유가를 포함한 상품가격이 고점 대비 40% 추락해 1983년 멕시코의 부도에 이어 아르헨티나, 브라질, 나이지리아, 필리핀, 터키 등 주요 신흥시장의 부도가 이어졌다.

세계 경제가 빈사상태인데 북해산 원유생산은 최고조에 달했고 러시아도 파산 직전인 계획경제를 부양하느라 석유를 최대한으로 퍼 올리면서 공급과잉이 심해졌다. 이에 따라 1986년초 WTI는 배럴당 31.75달러에서 3월 31일 배럴당 10.42달러까지 폭락했다.

OPEC내 최대 원유생산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당시 북해산 브렌트유에 대응하기 위해 원유 생산량을 하루 1천만 배럴에서 250만 배럴로 줄였다. 그러나 다른 산유국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해 가격방어에 실패하자 사우디는 다시 증산에 나섰다. 그 결과 유가는 폭락했다.

이때 적도 부근의 바닷물 수온이 올라가는 엘니뇨 현상이 발생, 유가를 끌어내리는데 기여했다.

OPEC은 1986년 말에 가서야 감산결정을 했고, 유가는 다시 완만하게 상승했다.

한국투자증권 박중제 연구원은 “가격 결정력을 보유했던 OPEC은 경쟁적인 증산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속력이 약화돼 힘을 쓰지 못했다”면서 “유가 급락이 1년 이상 지속된 뒤에야 OPEC은 감산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에는 신흥국으로 자본이 급격히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면서 위기가 발생했다. 1994∼1995년에 멕시코발 금융위기로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등 남미 위기가 발생한 데 이어 1997∼1999년에 아시아 외환위기가 잇따라 터졌다.

신흥국 경제위기로 인한 수요 부족 속에 1990년대 후반에 OPEC 회원국인 베네수엘라가 급격히 생산량을 늘리자 사우디가 자국의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함께 생산량을 확대하면서 WTI가 배럴당 10달러로 급락했다. 최저가는 1998년 12월 10일 기록한 배럴당 10.72달러다.

베네수엘라는 당시 하루 생산량을 1992년 220만 배럴에서 1998년 350만 배럴로 급격히 늘렸다. WTI는 1998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듬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감산을 단행하고서야 바닥을 찍고 상승하기 시작했다.

1997∼1998년에는 역대 최대 강도로 적도 부근의 바닷물 수온이 올라가는 엘니뇨 현상이 발생해 겨울이 따뜻한 이상기온이 이어지면서, 원유가격 폭락에 일조했다.

◇ 신흥국 위기·엘니뇨 속 공급과잉 지속…유가 10달러 데자뷔

최근 세계경제와 국제석유시장을 둘러싼 상황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대로 떨어졌던 1986년, 1998년과 다르지 않게 심각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저금리 정책을 운용하면서 고수익을 좇는 자금이 신흥국으로 대거 흘러들었다. 내년부터 신흥국들이 발행했던 채권에 대한 만기가 도래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금리정상화를 시작해 신흥국발 부채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성장둔화로 인한 수요감소로 원자재가격은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에, 공급과잉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OPEC 국가들이 감산에 합의하지 못하고 치킨게임을 이어가는 와중에 미국의 원유수출 금지조치 해제, 이란의 원유증산이 더해지면서 세계 석유시장의 공급과잉은 내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15일 미국 하원에서 민주·공화 양당은 자국산 원유수출 금지 조치를 40년만에 해제하는데 합의해 조만간 미국의 원유수출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와 함께 세계 3대 산유국으로 하루에 원유 950만 배럴을 생산하는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면 그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은 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1975년부터 미국산 원유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현재 미국은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만 하루 50만 배럴에 한해 원유를 수출하고 있다.

내년부터 이란의 원유생산이 100만배럴 늘어날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이란은 앞으로 2∼3주내 핵협상 타결의 결과물인 핵 합의안 이행을 마치면 경제·금융제재가 해제된다.

국제금융센터 오정석 원자재팀장은 “원유시장이 완전히 OPEC의 통제권에서 벗어난 현재의 상황이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 후반과 비슷하다”면서 “이제 누가 감산할지는 OPEC과 미국의 싸움이 아닌 OPEC 내부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1분기를 저점으로 상반기까지 유가는 지지부진할 것”이라며 “상반기 내에는 OPEC 회원국 간의 싸움이 한계에 다다를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결말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OPEC과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미국의 산유량은 올해 하루 평균 929만 배럴에서 내년 877만 배럴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게 미국 에너지부(EIA)의 전망이다. 하지만, OPEC의 산유량은 내년에도 최소 100만 배럴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 겨울에는 이에 더해 역대 세 번째로 강력한 엘니뇨 예보로 겨울 원유재고가 늘어나 유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 국제유가 배럴당 20달러대 전망 잇따라…캐나다산은 이미 22달러

세계 석유시장의 공급과잉이 좀처럼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공급과잉 현상 심화로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내년 4분기에 이르면 미국을 중심으로 원유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하락 현상이 멈출 것이라는 전망이다.

씨티그룹도 최근 보고서에서 산유국들의 석유생산이 저장능력을 초과할 정도로 과도하게 늘어나면 WTI가 배럴당 20달러대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씨티그룹은 보고서에서 “원유 생산이 저장능력을 초과할 정도로 확대된다면 산유국들은 억지로라도 생산을 줄여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또 산유국들이 생산원가가 비용을 초과해 억지로 생산을 줄일 정도가 되려면 WTI는 배럴당 20달러대 후반까지, 북해산 브렌트유는 30달러선까지 내려가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캐나다나 이라크, 멕시코산 원유는 이미 2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멕시코 원유는 지난 15일 배럴당 28달러 아래에서 거래돼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라크는 아시아 국가들에 배럴당 25달러씩 수출하고 있고, 서부 캐나다산 원유는 22달러 아래로 거래되고 있다.

KBC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 PIC의 에산 울-하크 선임컨설턴트는 블룸버그에 “전 세계 석유 생산업자의 3분의 1 이상이 수지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면서 캐나다산 원유 생산업자들도 사업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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