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선택한 전면적 양적완화는 미국과 일본이 이미 시행했거나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지난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처음 시작된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은 당시 영국도 함께 실시했다. 중앙은행의 국채 대량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 핵심으로, 주요국 경기하강에 대한 극약처방의 대명사처럼 굳어졌다.
일본 역시 2000년대 들어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경기침체를 타개하려고 양적완화를 하기 시작했다.
ECB는 그리스 등 유럽의 재정위기에 닥쳐 2012년 9월 무제한 국채매입 프로그램(OMT)을 발표했지만 보류됐다가 결국 이번에 양적완화 카드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 지표 호조 보인다는 미국…일부선 글쎄
무엇보다 미국의 사례는 곱씹어볼 부분이 많다. 적어도 지표로 나타나는 미국 경제는 대체로 호조세라는 분석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3.6%였다. 이는 작년 10월에 예측했던 데서 0.5%포인트나 올라간 것이다.
작년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한 달 전보다 0.4% 떨어져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되던 2008년 12월 이후 6년 만에 낙폭이 가장 컸다.
올해 들어 고용 지표는 혼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양호하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물론, 물가는 저유가 요인과 관련 있는 등 이 모든 것이 양적완화 정책 시행에 기인한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상당 정도는 그런 평가가 가능하다.
미국은 2010년 1분기에 종료한 1차 양적완화 때 모두 1조7천억 달러를 풀었다. 이어 2010년 11월∼2011년 6월 2차 때 6천억 달러를 공급하며 벤 버냉키 당시 연방준비제도(FeD·중앙은행) 의장이 낙수 효과를 언급했다.
이 효과는 대기업과 부자들의 투자·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 이어져 전체적으로 경기부양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분수 효과의 반대로 보면 된다.
3차 양적완화는 시즌 1, 2로 나뉘어 실시했다. 2012년 12월 이후에는 매달 채권 매입 규모를 무려 850억 달러로까지 늘렸다. 헬기에서 돈을 뿌린다는 비유가 나올 정도였다.
차고 넘치는 유동성이 인플레 등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중앙은행이 발권으로 얻는 이익을 뜻하는 시뇨리지를 마음껏 누렸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돈을 마구 찍어내 입게 되는 물가 상승 등 손해보다 자산 증가와 경제 성장으로 얻게 되는 이득이 더 많았다는 셈법이다.
하지만 양적완화 시행 시기와 그 이전 기간의 경제 통계를 분석하면 실업률은 낮아졌지만 노동자 평균 소득은 줄었다거나 실질임금은 2008년 말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버냉키가 언급한 낙수 효과를 빗대어 말하면, 부자들만 물줄기 세례를 받았을 뿐 다수 서민과 광범위한 중간소득층은 물 한 방울 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함께 초기 양적완화를 시행한 영국의 의회 재무위원회도 2012년 예산보고서에서 양적완화는 회사채 같은 금융자산의 가격 상승을 이끌었고, 이들 자산 대부분은 부자들의 것인 만큼 재분배 효과는 부자에게만 유리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적었다.
◇ 약발 별로 없다는 일본…갈 길 멀어
일본 중앙은행도 2001∼2006년 채권 40조 엔을 사들인 데 이어 2010∼2013년 2차 양적완화를 단행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집권한 2012년 말 이래 무제한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2년 내 물가상승률 2%를 목표점으로 두고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 아베노믹스의 골자다.
일본은 그러나 소비세 인상과 맞물려 내수가 가라앉으면서 마이너스 성장하는 등 양적완화의 약발이 약하다는 진단을 받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금리 인하를 제때 하지 못했고, 교역조건 악화에 따른 소득의 해외 유출이 디플레 원인임에도 다른 데서 원인을 찾아 과도한 재정·금융정책만 양산했다고 비판한다.
ECB는 양적완화를 먼저 경험한 미국과 일본 중 어느 쪽에 가까운 결과를 얻을지 주목된다.
◇ 위험분담, 평가절하 희비 갈리는 ECB
다만, 분명한 것은 ECB와 이들 국가의 양적완화 정책 시행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비교가 어렵다는 점이다.
ECB는 유로존의 부국과 빈국이 섞인 19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유로화 발권 중앙은행이지만 미국, 일본, 영국은 각기 달러, 엔, 파운드화를 발권하는 중앙은행이 별도로 있다.
유로화 가치는 회원국 경제력의 평균이 반영되므로 양적완화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은 제조업 기반이 강하고 수출 의존도도 큰 독일 같은 나라에는 득을 주지만, 정반대의 경제 구조를 가진 국가들에는 실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독립적 발권 중앙은행을 가진 국가들은 대체로 경상수지 흑·적자 등에 맞물려 화폐 가치가 변화하지만 유로존 국가들은 다른 회원국 경제 상황에까지 연동돼 유로화 가치가 변하기 때문에 전혀 처지가 다르다.
나아가 그리스 등의 저급 국채를 ECB가 매입 주체로 나서 사들이면 위험이 회원국 전체로 분산되는 효과를 얻지만, 회원국 중앙은행이 저마다 각기 자국 국채만 사들이면 리스크가 분담되지 않는 약점이 두드러질 수 있다.
ECB의 양적완화 선호 세력은 위험을 나눠야 한다며, 독일은 위험을 나누지 말아야 한다며 그동안 내내 맞서왔다.
연합뉴스
지난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처음 시작된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은 당시 영국도 함께 실시했다. 중앙은행의 국채 대량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 핵심으로, 주요국 경기하강에 대한 극약처방의 대명사처럼 굳어졌다.
일본 역시 2000년대 들어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경기침체를 타개하려고 양적완화를 하기 시작했다.
ECB는 그리스 등 유럽의 재정위기에 닥쳐 2012년 9월 무제한 국채매입 프로그램(OMT)을 발표했지만 보류됐다가 결국 이번에 양적완화 카드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 지표 호조 보인다는 미국…일부선 글쎄
무엇보다 미국의 사례는 곱씹어볼 부분이 많다. 적어도 지표로 나타나는 미국 경제는 대체로 호조세라는 분석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3.6%였다. 이는 작년 10월에 예측했던 데서 0.5%포인트나 올라간 것이다.
작년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한 달 전보다 0.4% 떨어져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되던 2008년 12월 이후 6년 만에 낙폭이 가장 컸다.
올해 들어 고용 지표는 혼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양호하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물론, 물가는 저유가 요인과 관련 있는 등 이 모든 것이 양적완화 정책 시행에 기인한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상당 정도는 그런 평가가 가능하다.
미국은 2010년 1분기에 종료한 1차 양적완화 때 모두 1조7천억 달러를 풀었다. 이어 2010년 11월∼2011년 6월 2차 때 6천억 달러를 공급하며 벤 버냉키 당시 연방준비제도(FeD·중앙은행) 의장이 낙수 효과를 언급했다.
이 효과는 대기업과 부자들의 투자·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 이어져 전체적으로 경기부양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분수 효과의 반대로 보면 된다.
3차 양적완화는 시즌 1, 2로 나뉘어 실시했다. 2012년 12월 이후에는 매달 채권 매입 규모를 무려 850억 달러로까지 늘렸다. 헬기에서 돈을 뿌린다는 비유가 나올 정도였다.
차고 넘치는 유동성이 인플레 등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중앙은행이 발권으로 얻는 이익을 뜻하는 시뇨리지를 마음껏 누렸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돈을 마구 찍어내 입게 되는 물가 상승 등 손해보다 자산 증가와 경제 성장으로 얻게 되는 이득이 더 많았다는 셈법이다.
하지만 양적완화 시행 시기와 그 이전 기간의 경제 통계를 분석하면 실업률은 낮아졌지만 노동자 평균 소득은 줄었다거나 실질임금은 2008년 말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버냉키가 언급한 낙수 효과를 빗대어 말하면, 부자들만 물줄기 세례를 받았을 뿐 다수 서민과 광범위한 중간소득층은 물 한 방울 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함께 초기 양적완화를 시행한 영국의 의회 재무위원회도 2012년 예산보고서에서 양적완화는 회사채 같은 금융자산의 가격 상승을 이끌었고, 이들 자산 대부분은 부자들의 것인 만큼 재분배 효과는 부자에게만 유리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적었다.
◇ 약발 별로 없다는 일본…갈 길 멀어
일본 중앙은행도 2001∼2006년 채권 40조 엔을 사들인 데 이어 2010∼2013년 2차 양적완화를 단행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집권한 2012년 말 이래 무제한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2년 내 물가상승률 2%를 목표점으로 두고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 아베노믹스의 골자다.
일본은 그러나 소비세 인상과 맞물려 내수가 가라앉으면서 마이너스 성장하는 등 양적완화의 약발이 약하다는 진단을 받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금리 인하를 제때 하지 못했고, 교역조건 악화에 따른 소득의 해외 유출이 디플레 원인임에도 다른 데서 원인을 찾아 과도한 재정·금융정책만 양산했다고 비판한다.
ECB는 양적완화를 먼저 경험한 미국과 일본 중 어느 쪽에 가까운 결과를 얻을지 주목된다.
◇ 위험분담, 평가절하 희비 갈리는 ECB
다만, 분명한 것은 ECB와 이들 국가의 양적완화 정책 시행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비교가 어렵다는 점이다.
ECB는 유로존의 부국과 빈국이 섞인 19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유로화 발권 중앙은행이지만 미국, 일본, 영국은 각기 달러, 엔, 파운드화를 발권하는 중앙은행이 별도로 있다.
유로화 가치는 회원국 경제력의 평균이 반영되므로 양적완화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은 제조업 기반이 강하고 수출 의존도도 큰 독일 같은 나라에는 득을 주지만, 정반대의 경제 구조를 가진 국가들에는 실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독립적 발권 중앙은행을 가진 국가들은 대체로 경상수지 흑·적자 등에 맞물려 화폐 가치가 변화하지만 유로존 국가들은 다른 회원국 경제 상황에까지 연동돼 유로화 가치가 변하기 때문에 전혀 처지가 다르다.
나아가 그리스 등의 저급 국채를 ECB가 매입 주체로 나서 사들이면 위험이 회원국 전체로 분산되는 효과를 얻지만, 회원국 중앙은행이 저마다 각기 자국 국채만 사들이면 리스크가 분담되지 않는 약점이 두드러질 수 있다.
ECB의 양적완화 선호 세력은 위험을 나눠야 한다며, 독일은 위험을 나누지 말아야 한다며 그동안 내내 맞서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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