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5년<상>]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남긴 4자 키워드 8選… ‘강화된 4원칙·사라진 4통념’

[글로벌 금융위기 5년<상>]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남긴 4자 키워드 8選… ‘강화된 4원칙·사라진 4통념’

입력 2013-09-12 00:00
업데이트 2013-09-12 00:19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2008년 여름 미국 월가에는 부동산 모기지론과 관련해 프레디맥과 페니메이가 무너져 정부가 자금을 투입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리먼 브러더스도 곧 무너질 텐데 작은 회사여서 큰 충격은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건 완전히 잘못된 계산이었지요. 얼마 후 휘몰아친 건 그야말로 공포, 청천벽력이었죠.” 당시 미국 월가의 한 금융회사에 파견됐던 기획재정부 고위 공무원의 묘사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 5년. 글로벌 경제에서는 4개의 원칙이 강화됐고 4개의 통념은 소멸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남긴 8개의 키워드를 사자성어로 풀어본다.




1. 대마불사!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회생은 기축통화인 ‘달러의 힘’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양적완화(QE) 정책으로 달러를 수도 없이 찍어낸 미국은 ‘대마불사’의 전형을 보여줬다. 물론 위기의 와중에 무너지지 않은 AIG, 시티그룹과 같은 글로벌 금융회사도 이 범주에 해당한다. 전 교수는 달러를 가진 미국을 ‘금본위제 시대에 금광을 가진 국가’로 표현했다.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초반 미국과 같은 확장적 통화정책을 펼쳤지만 미국과 같은 힘이 없어 오히려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진 적이 있다. 전 교수는 “엔화는 결국 절반만 기축통화였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던 격이었다는 얘기다.

2. 수출입국!

무역수지 흑자 없이는 경제 안정이 없다는 점도 지난 5년간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제조업 경쟁력과 연결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었던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국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무역수지 흑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경상수지는 결국 국가의 대외건전도를 나타내는 지표”라면서 “실물경제가 튼튼한 국가들이 금융위기에도 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도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높은 결정적인 이유는 높은 경상수지 흑자 덕택”이라고 말했다.

3. 신용만능!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질을 ‘거품’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부동산 대출, 금융 파생상품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덮으면서 거품이 생겼다”면서 “시장이 순식간에 믿음을 잃자 재정 등 정책적 수단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역시 거품이 꺼지면서 투자가 위축되고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면서 “개인이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일자리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4. 국고수성!

건전한 재정 없이 탄탄한 펀더멘털(기초체력)은 불가능하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리먼 사태의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건전한 재정이었다”면서 “정부는 국민들에게 지금은 어렵지만 탄탄한 재정을 유지함으로써 미래에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2년째 적자예산을 편성하면서 2014년부터 재정수지 흑자를 내겠다는 약속을 뒤집었다. 그동안은 괜찮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재정 건전성 관리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5. 금융입국?

우리나라도 리먼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제조업 성장 단계를 건너뛰고 금융서비스업으로 우뚝 선 아일랜드 같은 나라를 동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제조업 없는 금융 산업 육성은 사상누각임이 드러났다. 이한규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금융 주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국가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제조업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2008년 이후 미국은 제조업에 집중 투자했다.

6. 탐욕질주?

함께 공존하는 경제 민주화와 동반 성장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2011년 8월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반월가 시위는 99%가 1%의 탐욕에 대항한 사건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 모델이나 부자 위주의 세금 정책들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 중심 성장 환경에서는 대기업의 힘이 막강했지만 내수 중심의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동반 성장이 필수적”이라면서 “같은 맥락에서 경제 민주화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7. 성장지상?

고도 성장의 환상은 버리는 게 낫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은 고령화되는 인구구조 등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제는 실질적인 행복 지수를 높이는 내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소득 양극화가 심해졌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축 대신 가계 부채를 늘린 점은 반성하자고 했다.

8. 복지만능?

재정 없는 복지가 사상누각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복지 선진국이었던 유럽 국가들의 상당수가 재정 위기에 빠졌다. 재정 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복지는 다음 세대에 큰 세금 부담을 주게 된다.

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해 세금을 더 징수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정책을 확대하면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2013-09-12 6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부터 처리하자는 입장을, 국민의힘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는 등 연금 구조를 바꾸는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모수개혁이 우선이다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