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인출기 사진으로 탐문해 중국여성 살해 용의자 특정

현금인출기 사진으로 탐문해 중국여성 살해 용의자 특정

입력 2016-05-15 14:56
업데이트 2016-05-1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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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캐묻고 휴대전화 압수하자 피의자 압박감 못이겨 ‘자수’

제주에서 알고 지내던 중국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중국인 S(33)씨가 피해자 시신 발견 한달 만인 지난 14일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현금자동인출기 카메라에 찍힌 용의자의 사진을 바탕으로 수사망을 좁혀갔고, 압박감을 못 이긴 S씨는 결국 자신의 범행을 털어놨다.

지난달 중순 제주의 한 임야에서 시신이 발견된 날부터 피의자 자수까지 경찰의 수사 상황을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귀포경찰서 브리핑 내용 등으로 바탕으로 재구성해본다.

◇ 고사리 채취하던 주민 시신 발견…이틀 만에 신원 확인

경찰이 이 사건을 처음 인지한 건 지난달 13일 정오께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의 한 임야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던 한 주민이 여성 시신을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에는 가슴과 목 등을 수차례 찔린 상처가 있었다. 발견 당시 시신은 이미 부패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시신 대부분이 부패해 신원 확인에 애를 먹다가 왼손 검지 지문이 1㎝ 정도 남아있는 것을 검시관이 발견, 희망의 실마리를 잡았다.

그러나 국내 실종자 가운데는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고, 피해 여성이 중국 브랜드 옷을 입고 있는 등 차림새를 보아 중국인이나 동남아인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신 발견 이틀 뒤인 지난달 15일에는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시신의 인상착의 등이 담긴 전단을 배포했다.

이런 과정에서 시신에 조금 남아있던 지문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있는 출입국 기록 상의 외국인 지문과 일일이 대조한 끝에 지난달 15일 밤 이 여성이 무사증으로 제주에 온 중국인 A(23)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용의자 체포했다가 ‘허탕’…수사 한동안 답보

수사는 시신 발견 이틀여 만에 숨진 여성의 신원을 확인하며 속도를 내는가 싶었지만 다시 답보상태에 빠졌다.

유력 용의자로 추정되는 남성을 체포해 조사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달 18일 A씨가 일하던 주점의 단골손님이던 한국인 남성 B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해 사건과의 관련성을 추궁했다.

그러나 B씨가 피해 여성과의 관계와 사건 전후의 행적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데다, 범죄의 연관성에 대한 증거가 부족해 40여 시간 만인 같은 달 20일 새벽 석방했다.

A씨의 주변을 조사하기 위한 자료 수집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A씨와 주변인물들이 대부분 대포폰으로 별정 통신사에 가입해 휴대전화를 쓴 탓에 별정 통신사 20여 곳에 자료 회신을 부탁했지만 회신이 늦어서 자료 수집이 지체됐다.

A씨가 사용하던 중국 은행 계좌에 대한 자료 회신 절차도 늦어져 중국 공안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자료 수집과 함께 경찰은 A씨가 한국에 입국해 자주 접촉했던 내·외국인 29명에 대해 출국을 금지하거나 정지, 조사했다.

이들 가운데 의심할 만한 4∼5명의 은행계좌와 집, 차 등에 대해 10여 차례 압수수색했고 통신 기록을 조회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 주변 등에서 탐문수사도 계속 했다.

◇ 현금인출기서 포착된 용의자…수사망 좁히자 ‘자수’

수사가 지지부진해지던 중 이달 초 제주시 노형동의 한 현금자동인출기에 설치된 카메라에서 유력한 용의자의 모습을 포착하며 수사는 다시 급물살을 탔다.

한 남성이 지난해 연말 A씨의 계좌에서 돈을 찾는 장면이 찍힌 것이다.

그러나 이 남성이 흰색 모자를 눌러쓰고 목도리 등으로 얼굴을 가린 데다가 화질도 좋지 않아 모습을 선명히 알아볼 수 없었다.

경찰은 이 사진으로 끈질기게 탐문수사를 벌인 끝에 이 남성이 S씨(33) 같아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다.

형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S씨의 주변을 조사한 뒤 지난 11일 S씨를 찾아가 이것저것 캐물으며 S씨의 반응과 진술 태도를 살펴봤다.

추궁하는 과정에서 S씨가 A씨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음에도 모르는 사이라고 거짓말하는 등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포착됐고, 형사의 ‘감’과 ‘촉’은 S씨가 범인이라고 지목하기 시작했다.

13일에는 경찰이 S씨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가져갔다.

이처럼 경찰 수사망이 점차 좁혀오자 더이상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S씨는 14일 오후 1시 10분께 담당 형사에게 전화해 범행을 자백하며 자수하겠다고 했다.

담당 형사는 S씨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경찰관서인 삼양파출소로 가도록 했고, S씨는 14일 오후 삼양파출소를 찾아가 경찰이 S씨의 신병을 확보하게 됐다.

경찰은 이날 오후 S씨에 대해 보강조사를 거쳐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피의자로부터 압수한 차량과 컴퓨터 등을 감정·분석해 증거를 확보하고, 다음주 중에는 현장검증을 하는 등 범행 동기와 과정을 밝혀나갈 계획이다.

이연욱 서귀포서 수사과장은 “피의자는 말다툼하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를 외진 곳으로 데려가서 대화한 점이나 차에 흉기가 있었던 점, 살해 후 돈을 신속히 인출한 점 등을 봤을 때 우발적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계획적 범행인지, 공범이 있는지 등 신중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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