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 낀 후보에 “내 말 안들리나”…힐러리 기부 논란에 “돈냈더니 결혼식 와”
“대선후보인지, 화를 잘 내는 리얼리티 TV쇼 스타인지 때때로 구분하기 어려웠다.”<뉴욕타임스>6일(현지시간)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첫 공화당 대선후보 TV 토론회의 주인공은 예상대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였다.
다만 진지하게 백악관 입성을 준비하는 ‘정치인’ 트럼프가 아니라 앞뒤를 가리지 않는 거친 막말과 자기과시로 희화화된 ‘예능인’ 트럼프로서 토론을 주도했다는 게 문제였다.
나머지 9명의 후보들이 며칠 동안 가상 토론으로 만전을 기하고 TV 토론 장소인 퀴큰론스 아레나 경기장에 일찌감치 도착해 리허설을 하거나, 미리 준비한 브리핑 책자에 고개를 처박고 ‘열공’을 하는 동안에도 트럼프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미 “그런 (토론회 준비) 노력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규정한 트럼프는 마치 평소 일정 중 하나를 소화하듯 전용기를 타고 오후 느지막이 클리블랜드에 도착했다.
특유의 ‘썩소’와 손가락 ‘V’ 사인과 함께 청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트럼프는 토론 시작부터 ‘적’인 민주당은 물론 같은 공화당 경쟁자들에게 최소한의 정치적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막말을 퍼부으며 좌충우돌했다.
보청기를 낀 랜드 폴(켄터키) 상원의원과의 격론 도중 그를 노려보면서 “내 말이 안 들리는 것 같다”고 말한 뒤 “당신, 오늘 힘들어하는군”이라고 비꼬았다.
과거 자신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에게도 기부금을 냈다는 약점을 잡고 폴 의원이 “모든 유형의 정치인들을 사고 팔았다”고 비난하자, 트럼프는 “나는 당신도 샀는데. 내가 당신에게 돈을 많이 줬잖아”라고 응수했다.
심지어 클린턴 전 장관에게 기부금을 낸 것과 관련해 “내가 ‘결혼식에 오라’고 말하자 클린턴 전 장관이 실제로 왔다”며 “왜 그런지 아는가? 내가 (돈을) 줬으니까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여성 비하 발언을 놓고 사회자인 폭스뉴스 간판 앵커 메긴 켈리와 공방을 벌일 때는 서바이벌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견습생)에서 자신이 유행시킨 ‘넌 해고야’(You are fired)라는 대사를 날릴 것처럼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뉴욕타임스(NYT)는 평했다.
그가 여성을 ‘돼지, 개, 역겨운 동물’ 등으로 비하했다는 켈리의 지적에 “로지 오도넬(동성결혼을 한 거구의 여성 코미디언)에게만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 오도넬뿐만이 아니다”는 켈리의 재반박에 “그렇다”고 바로 시인해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토론회 내내 마치 TV 예능프로를 연상시키는 트럼프의 좌충우돌 언행에 청중들이 때때로 야유를 퍼붓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이날 트럼프의 토론회 데뷔전에 대해 NYT는 “트럼프는 터무니없었고 품위를 떨어뜨렸다”고 총평을 내렸다.
트럼프의 ‘원맨쇼’에 당초 그가 토론을 독식하지 않도록 잘 진행하겠다던 진행자들의 약속도 무위로 돌아갔다.
NYT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는 총 11분14초를 발언해 부시 전 주지사(8분48초)를 여유 있게 제치고 발언시간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5분45초)와 폴 의원(5분28초)의 두 배에 이른다.
토론회에서 자기홍보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신경외과의 출신 벤 카슨(6분46초)은 “내가 다음 토론회에 나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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